벌써 잊었는가
벌써 잊었는가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8.05.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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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지난 2월 8일 천안시청 브리핑실

천안시민단체협의회와 지역 여성단체, 대전, 세종, 충남, 충북 등 충청권 4개 지자체 성폭력상담센터 등 33개 단체 대표 30여명이 `미투'의 상징인 흰장미 꽃을 지니고 들어섰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천안시체육회에서 지난해 상반기 6개월 여간 지속된 직장 내 위력에 의한 성추행 사건을 은폐한 의혹을 사는 구본영 천안시장을 성토하기 위한 자리였다.

100일 후인 지난 17일 이번엔 간호사들이 같은 장소에 섰다. 천안지역 간호사 100인을 대신한다는 세 명의 간호사는 뇌물수수·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된 상태에서 6·13 지방선거 천안시장에 출마한 구본영 후보를 지지한다며 다음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병원 종사자를 위한 행정 지원과 시민 건강 증진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구본영 후보를 지지한다. 천안시를 중부권 최고 도시로 성장하도록 이끈 구본영 후보는 민선 7기 천안시의 발전을 이끌 시장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한 인물이다.”

그 이틀 전엔 천안지역 62개 문화예술단체장들이 또 같은 장소에 나타났다. 이들 역시 구본영 후보에 대한 공치사를 연발하며 지지를 표명하는 성명서를 읽고 총총히 돌아갔다. 이들이 돌아가기 전에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단체장들이 회원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래서 단체가 아닌 단체장 이름으로 지지 선언을 한 것”이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벌써 잊었는가

미투 운동이 한국에서 막 시작되던 지난 2월 초, 충청타임즈는 구본영 천안시장이 자신이 회장인 천안시체육회의 직장 내 성추행 사건을 은폐한 의혹을 추적, 보도했다. 파장은 컸다. 33개 시민·여성단체가 비난 성명을 냈고, 경실련은 시장직 사퇴를 촉구하며 구본영 시장을 압박했다. 여성 지방의원들도 사퇴 촉구 대열에 동참했다.

충청타임즈는 이어 구 시장이 가해자인 A씨를 연초에 천안시문화재단 이사로 선임한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다. 시장이 그에게 면죄부를 준 것도 모자라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공공단체의 임원으로 버젓이 활동하게 한 것이다. 정당, 여성 단체 등이 1인 시위에 나서자 화들짝 놀란 문화재단은 곧바로 A씨를 해임했다. 이후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런데 어쩐지 그 `속도감'과 진행 과정이 미덥지가 않다. 기사의 `팩트'가 체육회장(구본영 시장)이 직장 내 위력에 의한 성추행 사건을 은폐했다는 것인데 검찰은 아직 의혹의 정점에 있는 구 시장에 대해 단 한 번의 조사도 하지 않았다.

보도 후 비친 구 시장의 대응은 더욱 가관이다. 자신의 주장대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것을 몰랐다 하더라도, 당연히 체육회의 수장으로서 그는 덮어졌던 체육회 성추행 사건을 조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하지만, 조치는커녕 검찰에서 피해자 신분으로 조사까지 받고 온 직원들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2차 피해까지 당하며 고통받는 여직원들에게 최소한 위로의 말이라도….

그런데 이런 사람을 시장으로 뽑아야 한다며 간호사 100명이, 문화예술단체장 62명이 앞다퉈 시청 브리핑실로 몰려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심각하게도 앞으로 또 이런 회견이 예약돼 있다. 선거판이 미쳐간다. 뇌물수수, 채용비리. 다 용서할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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