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공주와 봉투왕자
봉지공주와 봉투왕자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8.05.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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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일회용품 천국에서 살고 있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비닐봉지를 꺼내 음식을 보관하고 일회용 장갑을 끼며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 커피를 마셔도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심지어 일회용 냄비에 떡볶이를 끓여 먹는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사용하고 있지만, 내가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배 아프면 화장실 가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다.

어느 순간 그런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어떠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무심결에 뽑아든 물티슈에도 죄책감이 느껴진다. 여전히 일회용 컵에 커피를 마시고 아무렇지 않게 비닐봉지를 꺼내 들곤 하지만 물건을 사고 비닐봉지에 넣지 않고 가져올 때 혼자 뿌듯해한다. 내 아이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다. 더 깨끗한 자연은 못 물려주더라도 이 상태는 유지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일회용품을 덜 사용하고자 마음은 먹지만 늘 실천이 어렵다.

도서 `봉지공주와 봉투왕자'(이영경 저·사계절·2018)를 보았다. 도서관에 그림책 특강 강사를 섭외하려고 책을 고르던 중 `아씨방 일곱 동무'로 유명한 이영경 작가의 신간으로 이 책이 소개된 것을 본 것이다. 왠지 이 책을 읽고 나면, 일회용품을 사용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것 같았다. 제목에서 주는 교훈이 크게 느껴져 선뜻 손에 잡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친숙한 종이봉투와 비닐봉지를 소재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을 뿐이다. 사이좋게 지내던 비닐봉지와 종이봉투들이 사이가 나빠지면서 사랑하는 사이인 봉지공주와 봉투왕자의 사랑 찾기 프로젝트이야기가 펼쳐진다. 봉투왕자는 겹겹이 쌓은 봉지 속에 비밀 특파원을 보내고 비닐 공주는 가볍게 뛰어올라 봉투왕자를 만나러 간다. 봉지공주와 봉투왕자의 사랑이 다시 두 나라의 평화를 가져다주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구멍이 난 비닐봉지는 묶으면 되고 구겨진 봉투는 다시 피면 된다며 봉지공주와 봉투왕자는 즐겁게 이야기한다. 무심결에 쓰레기통에 버리려 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된다. 손에 들려 있던 종이와 비닐봉지가 너무 멀쩡해서 손이 부끄럽다.

분명 작가는 어떠한 캠페인을 벌이고자 이 책을 쓰진 않았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유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을 것이다. 검은 봉지 모자를 쓰고 빨간 봉지를 입은 봉지공주와 네모 반듯한 편지봉투, 그리고 갖가지 모양의 예쁜 봉투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책 속의 딱풀 부대의 공격 장면에선 그야말로 빵 터졌다. “다~ 붙여 버리겠다~~”이 말 한마디에 배를 잡고 웃었다. 유명 개그맨의 유행어가 생각이 나 꺼이꺼이 눈물 나도록 웃었다.

한마디로 재미있게 읽었다. 알록달록한 색감은 흰 여백이 감싸줘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다만 책을 읽고 나도 여전히 마음은 개운치 않다. 이런 이야기를 편안하게 읽어도 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하루도 나는 얼마나 많은 일회용품을 사용하며 지낼까? 나보다 더 오래 산다는 일회용품을 죄책감 없이 사용해도 되는 걸까? 책상에는 컵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뜬금없이 “오늘 하루 친하게 지냅시다.”라고 말을 건넨다. 나라도 조금 덜 쓰면 지구가 덜 아프겠지? 스스로 나를 칭찬해주면서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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