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2)
나침반(2)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8.05.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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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얼마 전, 미련스러울 만큼 운동을 마치고 온 난 허기진 배를 채우려 허겁지겁 구겨 넣듯 밥을 먹고 있었다. 귀찮다는 이유로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통을 그대로 뚜껑만 열어놓고 찌개는 가스불 위에 끓이면서 싱크대에 기대서서 밥을 먹고 있을 때다, 때마침 들어온 아들, “에구, 어머니 품위 좀 지키세요. 전형적인 아줌마 스타일은 오~ No!” “천장에 굴비 하나 매달면 딱 어울릴 그림입니다.”라고 툭 던진다.

머뭇거리며 나의 몰골을 보니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트레이닝복 차림에 땀으로 헝클어진 머리는 걸인 같은 형국이 되고 만 것이다. 찬 한 가지에 찌개를 떠먹는 모습이 궁상스럽고 초라해 보였을 터. 장난스런 말이지만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꾸덕꾸덕 말려진 굴비, 자린고비로 소문난 구두쇠가 새끼줄에 매달아 놓고 밥 한술 먹고 찬 대신 쳐다보기만 했다는 굴비, 아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건 또 뭐란 말인가. 불로초보다 더 좋은 명약은 웃음이라던데 밥을 먹는 내내 활짝 핀 속웃음이 가시질 않는다.그 후, 지인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도자기수저세트와 수저받침을 장만했다. 재주가 남다른 지인, 생활가재도구는 물론 아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만의 특색을 살려 독특한 수제 작품으로 뚝딱 탄생시킨다. 손재주는 물론 입담도 재치도 탁월하다. 옛 어른들은 재주 많은 사람은 끼니가 간 곳이 없다고 했듯 주변에서도 지인의 우수한 손재주의 부러움보다는 잘살기나 할까 하는 염려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성공했다. ‘자네는 성공할걸세’장인어르신의 이 한마디로 지인은 모래성이 아닌 기초부터 단단한 성을 쌓았다고 한다. 뛰어난 손재주로 도자기를 빚고 체험학습을 통해 홍보는 물론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세상은 쉽게 수락하지 않았다. 성공궤도를 달리는가 싶었는데 작품성보다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장식에 불과한 도자기, 판매가 부진하여 끝내 맞벌이로 전략한 아내는 생계형 직장으로 가장의 길을 걸었다.성공에 목이 마르고 갈증을 느끼면서도 달음질치고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불안해지며 몸도 마음도 바빠지는 현대인들, 그 대열에 당연히 지인도 있었다. 그럼에도, 한우물을 파던 지인, 도자기공방 옆에 민박을 겸직하면서 그 고객을 위한 체험프로그램으로 인프라를 구축하여 정상궤도에 다시 진입할 수 있었다. 만만치 않은 세상사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겉치레, 눈가림 같은 교양 그리고 아첨 따위는 훌훌 벗어 던지고 ‘자네는 성공할걸세’란 장인어른 말씀은 나침반이었다. 넘어지고 부딪치면서도 나침반 바늘의 방향을 직시하면서 삶을 영위했다.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누군가의 한마디는 사람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힘을 가졌다. 장인 어르신의 믿음이 그 남자를 성공하게 하였다. 진시황은 영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 헤맸다지만 지인은 안정적이고 럭셔리한 삶을 추구하는 고정론자가 아닌 창조하며 세상과 발맞춰 나가는 변화론자로 삶을 이끌었다고 한다.

친정아버지는 문을 닫아놓으면 집이 되지만 열어놓으면 세상과 소통하는 거라 늘 말씀하셨다. 문을 열어놓는 건 보수가 아닌 진보로써 변화를 추구하는 삶을 우회적으로 말씀하셨다. 장난스런 아들의 한마디로 인해 식탁에 수저받침을 올려놓는 작은 변화 그건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의 첫걸음이었다. 마치 문을 열어놓고 세상과 소통하는 나침반 방향처럼. 지인의 따스한 봄날처럼 따뜻하게 봄볕이 내리쬐는 날, 세상에 보여지는 것보다 내면에 나를 비춰주는 거울 하나를 품었다. 삶의 고명을 얹은 것처럼 유난히 평온한 날이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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