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산다는 것
지혜롭게 산다는 것
  •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8.05.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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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어느 날 아버지는 어린 송아지를 한 마리 사서 끌고 오셨습니다. 이 소는 장차 우리 집 일꾼 소가 될 것이니 우리에게 소 꼴을 베어다가 잘 키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동생들은 열심히 꼴을 베어다 먹였고, 송아지는 부쩍 자라 6개월 정도 지나니 제법 어미 소처럼 머리에는 뿔이 한 뼘 정도 자랐습니다. 우리는 마냥 좋아서 소를 만지고 장난치며 때로는 소등에 올라타 놀기도 했습니다. 그런 우리를 보고 아버지는 이제 소의 앞에 서거나 뒤에 바짝 서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라며 언제나 소의 옆에 서거나 소와 거리를 두고 몰고 다니라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지혜로운 행동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학교에서 오후 수업시간 졸음에 못 이겨 눈꺼풀이 내려앉을 즈음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 중에 “길을 가다가 큰 개를 만나면 무서워 벌벌 떨지 말고 당당하게 걸으면서 그래도 따라오면 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뒷걸음으로 서서히 물러나라. 그러면 개가 무서워서 도망간다.”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 이런 것을 아는 것도 다 지혜로운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삶의 지혜가 어디에 많이 있을까 생각하다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에 누가 지혜로운 분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어 선생님께 여쭈었더니 “아마 성자나 위인들이 아닐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주로 위인전이나 성자들의 말씀을 기록한 어록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책을 보고 위인들의 삶을 따라 살다 보면 지혜로운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에서 지혜롭게 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함께 살면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이 없을까? 그 길을 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요.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까? 우리가 행동할 때 어떤 것이 바르고 그른지 또는 이롭고 해로운지를 명확하게 안다면 지혜롭게 살기가 쉽겠지요.

성현들은 자신을 버리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삶을 버리고 어떻게 살까요. 하지만 그간 살아온 나의 삶을 되돌아보니 내가 나를 위해 산 시간보다는 가족을 위하고 직장을 위하고 때로는 내가 가입한 단체를 위해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삶의 시간이라고 해봤자 대부분 다시 남을 위해 살기 위한 준비인 잠자고 먹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인생 대부분을 남을 위해 살지만 뒷날 사람들은 우리를 성현이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정사를 불구하고 오로지 국민과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받친 이순신 장군과 국가의 위기상황에 국가를 구하고 임금님을 보좌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유성룡 대감에 대한 후래 평가 차이에서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삶을 모두를 위해 바치는 사람은 성현이라 하고 자신의 삶을 소수를 위해 바치는 삶은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한두 번은 전체를 위하는 삶을 살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이나 자기 가족의 이익을 위해 살고 간 사람들은 성현이라 하지 않습니다.

현세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평범하게 살지만 어느 순간은 인류를 위하거나 많은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 정신을 조금 더 키우고 넓혀간다면 자신이 성현이 되지는 못해도 우리는 보다 지혜로운 삶을 살다간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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