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앞치마와 치아(齒牙)
하얀 앞치마와 치아(齒牙)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8.05.2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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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밤새 치아齒牙가 아파 꼬박 밤을 새웠다.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온몸에 열이 나고 머리까지 아팠다. 나이 먹으니 몸 여기저기 고장 신호를 보내어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어간다. 신체의 어느 부분 하나 아프면 괴롭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특히 치통齒痛은 참기가 어렵다.

이튿날 치과로 달려가 임시 치료를 한 후, 아픈 치아를 빼내고 몇 달에 걸쳐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하여 여러 개의 임플란트 치아를 심었다. 내 또래 친구들 가운데도 거의 자기 치아를 유지하지 못하고 여러 개의 임플란트 치아를 심었으니 그나마 나이 탓이라 스스로 위로를 하고 있다.

요즈음 또 치아 하나가 찬물이 닿거나 딱딱한 것을 씹을 때 신호를 보낸다. 치아 하나를 버리고 인공 치아를 심기 위해 수개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나는 치아가 아프거나 치료를 받을 때마다 하얀 앞치마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길가에 누우셨던 어머니를 생각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여섯 일곱 살쯤으로 기억된다.

어머니는 치아가 많이 아프신지 며칠 동안 손으로 볼을 감싸 쥐고 괴로워하셨다. 참다못한 어머니는 어린 나를 혼자 집에 두기 걱정이 되어 나를 데리고 5㎞쯤 떨어진 읍내 치과를 가려고 길을 나섰다. 하루 한두 번 기차가 다닐 뿐 버스도 없었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닐 때라 가는 도중 엄마는 얼마나 치아가 아프셨으면 허리에 둘러 입었던 하얀 앞치마를 뒤집어쓰시고 길가 풀숲에 누워버리셨다. 큰길 옆 나지막한 산에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때였다.

나는 엄마가 걱정되어 지나가는 아주머니를 붙들고 `우리 엄마 좀 살려 주세요.'라고 울며 매달렸다. 어린 마음에 엄마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안됐던지 아주머니는 어머니를 일으켜 부축하고 치과에 함께 가 주었다. 다행히 치료를 받으시고 통증이 가라앉은 어머니의 편한 모습에 나도 안심이 되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아주머니가 무척 고마웠다.

그 후로도 어머니는 치아가 좋지 않아 여러 차례 치과에 다니셨으나 젊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틀니를 하셨다. 옛날엔 지금처럼 치과가 많지 않았고 임플란트 시술 같은 좋은 기술이 없었다. 어머니께서 틀니로 식사하실 때마다 많이 힘이 드셨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임플란트는 영구적인 것은 아니나 10년 이상 사용할 수 있고 관리만 잘한다면 그 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단다. 치아의 생김새나 색상까지 신경을 써서 제작되기 때문에 자연 치아와 비슷하다. 경비가 비싸 부담이 되었지만, 다행히 요즘엔 건강보험이 적용 되어 값이 많이 싸졌으니 치아가 나빠진 어른들에겐 좋은 치료방법인 것 같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에 가끔 `하얀 앞치마와 치아'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에 잠겼다. 어머니 돌아가신 지 어언 7년이 지났다. 시시때때로 어머니 생각이 나지만 특히 치과를 다닐 때엔 언제나 어머니 생각이 난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엔 틀니마저 빼놓으셨다. 누구나 나이 들면 이 과정을 거쳐야겠지만 태어날 때 튼튼한 이를 가지고 태어남은 진정 오복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치아 건강이 음식물을 씹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뇌 건강과도 직결된다니 평소 치아 관리를 잘하고 치료시기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아카시아꽃이 활짝 핀 오월, 하얀 앞치마를 쓰고 길가에 누우셨던 어머니 곁에서 울며 애태우던 소녀의 모습이 함께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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