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가깝고도 먼 존재
중력, 가깝고도 먼 존재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5.2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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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우리는 중력 속에서 살다가 중력 속으로 사라진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중력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 이 지구를 벗어난다고 해도 우리는 중력을 결코 벗어날 수는 없다.

높은 산이 그렇게 높은 것도 골짜기가 그렇게 깊은 것도 중력 때문이다. 중력이 없다면 높고 낮음도, 무겁고 가벼움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는 중력은 아직도 그 정체를 우리에게 다 들어내지는 않고 있다. 과학자들도 아직 중력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한다.

지구에 사는 우리는 지구의 중력에 적응되어 있다. 지구 표면의 중력 세기를 g로 나타낸다. 달에서는 중력이 1/6g밖에 되지 않아서 조금만 도움닫기를 해도 공중으로 몸이 날아오를 것이고, 목성에 간다면 중력이 3g으로 증가하여 그냥 걷기도 어렵고 서 있기도 힘들 것이다. 중력이 더욱 증가하여 10g이 되면 혈액 순환이 어려워 질식하게 된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급가속이나 급제동을 할 때는 매우 큰 중력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심한 경우에는 의식을 잃고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우주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력이 큰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블랙홀이다. 블랙홀에 점차 접근하면 소위 사건지평선이라는 곳을 만나게 되는데, 이 사건지평선을 넘으면 이 우주의 어떤 것도, 심지어 빛조차도 탈출하지 못하고 블랙홀에 잡아먹히게 된다. 사건지평선에서 중력의 세기는 어림잡아 10 g다. 상상이 가는가? 10g에서도 사람이 의식을 잃게 되는데 그것의 1000조 배나 되는 중력을 말이다.

산을 오르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도, 로켓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도,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도는 것도, 하늘에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것도, 이 우주에 1000억 개가 넘는 은하들이 존재하는 것도 모두 중력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이 우주의 한쪽 구석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중력 때문일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우리가 일상 경험하고 있는 이 중력의 본질을 아직 다 알지 못하고 있다. 뉴턴이 중력을 제안한 이후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중력은 매우 특별한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 중력이 그냥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인 것만이 아니라 중력은 공간을 휘게 한다는 것이다. 공간이 휘다니? 막대기를 휘게 할 수는 있지만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공간을 휘게 하나니! 공간이 휜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공간 4차원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3차원과는 달리 4차원을 눈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4차원을 속 시원하게 보여 줄 수는 없다. 하지만 3차원에서 산과 골짜기가 있듯이 4차원 시공간에도 산과 골짜기가 존재한다. 지구는 공간의 움푹 파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태양은 지구보다 더 움푹 파인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중력에 의해서 공간이 휘어지기 때문에 블랙홀이 존재한다. 블랙홀은 아마도 무한히 깊이 파인 공간일 것이다. 무한히 깊다고? 어떻게 유한하고 불완전한 우리의 두뇌로 무한을 그려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무한'이라는 말은 `모른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이렇게 우리가 숨 쉬고 걷고 뛰고 하는 모든 행동에 관여하고 있는 중력은 저 별과 은하와 이 우주에도 관여하고 있다. 중력은 이 우주에서 아교와 같은 존재이다. 달과 지구를 연결하고, 지구와 태양을 연결하고, 별과 별들을 연결하고, 은하와 은하를 연결하는 것이 중력이다. 이 우주가 증발해 버리지 못하게 붙잡아 주는 것이 바로 중력이다. 중력이 없다면 이 우주는 중심을 잃고 방황했을 것이다. 방황 정도가 아니라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장대높이뛰기 선수를 그렇게 애타게 하는 이 중력, 하지만 중력이 없었다면 장대높이뛰기 선수도 없었을 것이다. 중력이 없었다면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이 세상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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