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타령을 마치며
수저타령을 마치며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5.2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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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2주에 걸쳐 이 땅의 금수저들과 흙수저들에게 바치는 수저 타령을 했습니다. 금수저들에겐 행세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 했고, 흙수저들에겐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의 가치를 확장시키라 했죠.

웬 뚱딴지같은 수저 타령이냐고 힐난하지 않고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과 격하게 공감해 주신 분들께 경의를 표하며 마무리 글을 올립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흙수저로 태어나 각고의 노력 끝에 자수성가해 금수저나 은수저가 된 의지의 한국인들이 많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흙수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선한 금수저들도 산재해 있으니 아직은 살만한 세상입니다.

아무튼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을 부자 나라 대한민국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준 의지의 한국인들이 있어, 오늘도 맨주먹 붉은 피로 억척스럽게 자신의 삶과 운명을 개척하고 있는 젊은 흙수저들이 있어 희망을 노래합니다. 댓글을 단 분 중에 금수저를 쓴다는 게 긍수저로 잘 못 쓴 분이 있었는데 그분에게서 큰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맞아 바로 그거야.'긍정을 입에 넣고 사는 긍수저가 금수저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을, 아니 그런 긍수저가 진정한 금수저란 걸. 또 `형님 금도 은도 동도 다 흙에서 납니다'라고 선문답처럼 말해 준 절친의 말에 무릎을 쳤습니다. 흙수저라고 무시하거나 홀대하면 큰코다친다는 무서운 함의가 담긴 촌철살인이었으니까요.

맞아요. 금수저도 흙수저도 다 똑같은 사람이고, 흙수저도 운 때가 맞으면 하루아침에 금수저가 될 수 있고, 금수저도 자칫 잘못하면 아차 순간에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누가 천국에 갈 사람인지, 누가 더 훌륭한 사람인지, 누가 더 행복하게 살다가 웃으며 귀천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부모의 사회적 능력과 경제적 능력의 차이로 인해 졸지에 누구는 금수저가 누구는 흙수저가 되는. 그리하여 인생이란 마라톤을 하는데 출발부터 불평등과 불공정을 안고 뛸 수밖에 없는 참 야속한 세상이지만.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나이를 먹는 것, 갱년기가 오는 것, 병들고 죽는 것, 근심 걱정이 있는 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오고 겪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요. 달라야 오십 보 백 보이니까요. 으스대는 금수저들의 꼬락서니를 보세요.

재산 상속 문제로 칼부림을 벌이지 않나, 경영권 때문에 형제들이 법정투쟁을 하질 않나, 재산을 은닉하거나 갑질하다가 영어의 몸이 되질 않나,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질 않나, 부부금실도 그렇고 그런 요지경 속이잖아요.

또 부모의 잦은 해외 출장과 집 비움으로 어릴 때 부모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할 수도 있고, 삼성가의 부자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도란도란 마주 앉아 라면 먹는 작은 행복도 갖질 못하고, 거기다가 부모가 물려준 기업이나 재산을 잘 지키고 관리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릴 터이니 금수저라고 마냥 좋을 리 없죠.

어디 흙수저라고 마냥 나쁘기만 하리요. 없어서 겪는 삶의 불편과 고단함이 몹시 아프고 쓰리겠지만 더 이상 잃을 게 없으니 마음이 편하고, 가진 게 없으니 형제자매 간에 싸울 일도 없으며, 열심히 살다 보면 느끼는 소소한 기쁨과 행복도 제법 쏠쏠하잖아요.

월세 살다가 전셋집으로 옮길 때의 기쁨과 전셋집에서 내 집 마련해 이사 갈 때의 보람과 성취감은 흙수저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일 테니. 그러니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저급한 수저신분론은 사라져야 합니다. 대저 금수보다도 못한 금수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수저란 숟가락과 젓가락을 아우르는 음식물을 입에 집어넣는 도구입니다. 그게 금이면 어떻고 은이면 어떠며 흙이면 어떻습니까? 음식물을 잘 섭취해 신체발육과 건강증진에 기여하면 족한 것을. 하여 재력과 지위가 아닌 인간적인 매력이 중시되고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희원하며 글을 맺습니다. 부디 행복하세요.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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