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와 청남대, 그리고 노무현
재즈와 청남대, 그리고 노무현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2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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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재즈는 노무현입니다.

안개 같은 비가 내리는 금요일 저녁, 청남대는 재즈 선율에 심연의 바다처럼 잠기고 있습니다. 하늘이 잔뜩 낮아져 노래는 더 깊어지며, 사람들의 가슴 높이에서 세상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곳 청남대, 한 때는 대통령의 별장이었던 곳에서 나는 자꾸만 푸른 잔디밭으로 파고드는 재즈의 울림이 노무현을 닮았다는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음악은 확실하게 몸을 자극합니다. 청각을 어루만져 뇌를 개운하게 하거나 저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또 발장단을 맞추며 들썩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중 재즈는 저절로 발장단을 맞추게 하고, 우리 풍물 가락은 듣고만 있어도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기운이 있습니다. 이처럼 본능을 건드리는 재즈와 풍물농악은 요즘 쉽게 접할 수 없는 별천지의 것이 되었거나, 일부러 찾아들어야 하는 고급의 영역으로 웅크리고 있습니다.

원래 민중의 것이었으되 이제는 민중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마니아에 의해 열광되는 특별한 것이 되었는데, 재즈 선율이 깊어지는 청남대와 노무현을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은 어쩌면 나만의 것인지 모릅니다.

재즈는 처참한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고픈 흑인들의 간절함에서 비롯된 음악 장르입니다. 암울한 처지에서의 구원을 신에게 간구하던 흑인영가(Negro Spiritual)에서 블루스가, 그리고 그 블루스의 간절함이 `자유'를 갈망하는 음악적 표현으로 재즈가 비롯된 것입니다.

원래 아주 특별한 사람의 아주 은밀한 장소였던 청남대의 아름다운 자연은 이제 원하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자유'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참여와 소통, 그리고 보이지 않으나 여전히 굳건한 학력과 신분의 차별을 초월해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꿔왔던, 그리하여 마침내 청남대의 잠겼던 문을 열어 권위와 특권의 울타리를 무너뜨린 노무현은 말 그대로 자연과 사람, 그리고 그 속에 충분하게 교감하고 있는 `자유'의 상징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간절하게 `자유'를 갈구했던 희망의 노래, 재즈를 들으며 청남대의 푸른 녹음에 스르르 녹아드는 기분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조금은 특별한 음악이 되어 버린 재즈가 다시 국민이 주인인 시대를 걷는 청남대의 숲길처럼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게 내려옵니다. 재즈를 제대로 알거나 알지 못한다 해도 아무런 부담 없이, 가사를 알거나 그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한다 해도 그저 선율과 가락에 몸을 맡기며 조금씩 몸을 흔들 수 있음은, 그리하여 우리가 이 푸른 5월에 살아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아! 그러나 우리에게 이토록 풍성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준 노무현은 벌써 오래전 사람들의 세상과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노무현을 조롱하며 비하하는 비열한 일단의 무리들과 뒤섞여 살고 있습니다.

음악은 하나하나의 음표들이 이어지고 연결되면서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됩니다. 재즈는 그 음표 사이사이에 음이 제 박자에 충실하지 않고 기교적 엇박, 즉 싱커페이션(Syncopation)의 특징이 있습니다. 센 박과 여린박의 규칙성을 뒤바꿔 새로운 음의 세계를 만듦으로 자유를 향하는 저항의 의지를 담아냅니다. 청남대를 수놓은 갖가지 기화요초와 싱그러움을 자랑하는 초목들 역시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치열한 갈등과 대립을 통해 오히려 서로가 어우러지는 자유로운 조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주 최소한의 (인간이 만들어 낸)불빛으로 인해 비가 개이고 마침내 맑아진 밤하늘의 별들이 각각의 별자리에서 빛나는 성운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재즈와 어우러지는 색다른 자유의 기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는 어느새 아주 이상한 울타리를 만들고 있고, 또 북한과 대치되는 특정 세력의 특별한 정치적 구호의 좁은 틀에 갇혀 있습니다.

5월의 주말을 가슴 뛰게 했던 재즈와 청남대의 절묘한 조화에서 나는 민주주의보다 앞서고 커져야 할 우리의 진정한 `자유'를, 그리고 노무현을 생각합니다.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홉 번째 기일입니다. 힘들지만 그만 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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