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게의 꿈
소라게의 꿈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8.05.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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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치리릭 칙”

아침부터 탁한 기계음이 들린다. 무슨 소린가 하여 밖을 내다보니 사다리가 고층에 걸쳐져 있다. 위층의 어느 집이 이사를 가는가 보다. 봄철만 되면 자주 보는 광경이다. 다른 지역으로 직장이 발령이 났거나 더 크고 새 아파트로 옮겨가는가 보았다.

여기서 스무 해를 살았으니 언제 이사를 해보았는지도 까마득하다. 새로 지은 이 아파트로 올 때는 꿈만 같았다. 결혼해서 처음으로 마련한 내 집이었다. 남의 집을 5년간 전전하면서 세 번의 이사를 거친 뒤다. 내게는 으리으리한 대궐이었다.

남들 부럽지 않던 대궐이 이제는 대궐이 아니다. 이제껏 세 식구가 살면서 좁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들판의 사계절을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위치로 답답하지도 않고 좋다. 그래도 새로운 아파트의 넓은 평수로 이사 가는 이들이 부러워 봄에는 속앓이를 하곤 한다. 소유욕에서 오는 시기심이 나를 간사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평수가 큰 집을 좋아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욕이 담겨 있다. 집이 클수록 부(富)의 상징이 되어 더 넓은 곳에서 살기를 원한다. 요즘은 30평도 많이 사는듯하다. 아니, 50평을 가진 이들도 주위에는 꽤 있다.

이렇게 더 큰 집을 찾아 이사 다니는 바다의 소라게가 있다. 이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를 부릴 줄도 모른다. 몸짓을 커 보이게 하여 상대방을 겁주려는 것도 아니다. 점점 커지는 몸에 맞는 안식처를 구하기 위해서다. 길고 나선형의 부드러운 복부를 포식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빈 고둥껍데기를 집으로 쓰고 있다. 몸이 성장하면서 작아진 껍데기를 버리고 더 큰 것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게가 새집으로 이동하는 때는 밤 시간이다. 몸이 밖으로 빠져나와야 하는데 이때 잡아먹힐까 봐 염려되어서다. 나처럼 겁이 많은 녀석이다. 이렇게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지내는 특성 때문에 은둔자 게라는 별명이 붙었다.

어쩌다 잘못된 집을 구해서 자신보다 커다란 소라껍데기를 짊어지고 다니는 녀석도 있다. 또 너무 작은 터를 마련해서 온몸이 튀어나와 우스운 모습으로 박혀 다니는 게도 있다. 유튜브에서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 소라게를 보았다. 깨진 병의 주둥이를 집을 삼은 녀석도 보이고 사람들에 의해 버려진 블록에 터를 잡은 놈도 있다. 병뚜껑이 움직이는 게 이상해서 보니 게여서 놀랐다는 이들도 있다.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그들의 집이 되었다. 신기한 일이어서 올린 영상들에 마음이 짠하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자연이 주는 경고인 셈이다.

눈을 감는다. 내 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하얀 포말이 부서지는 해변에 기우뚱거리며 애를 쓰는 소라게가 보인다. 제 몸보다 몇 배 더 큰 소라껍데기를 이끌고 간다. 짓눌린 무게에 버거워하며 또 다른 집을 찾아가고 있다. 집에 가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집게발을 더듬거리며 간다.

게는 천적에게 자기를 지키기 위한 위장술을 죽을 때까지 쓴다. 정작 생을 마감할 때는 껍질을 밀쳐내고 밖으로 빠져나와 죽는다고 한다. 어쩌면 사람들과 많이도 닮아있다. 집을 떠나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삶의 끝을 맞는 모습이 말이다.

소라게는 알고 있을 터이다. 좋은 집은 큰 집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편한 집이라는 것을. 거기가 바로 대궐임을……. 꿈을 꾸며 가는 소라게의 집게발에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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