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와바라 시세이
구와바라 시세이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18.05.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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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1936년 일본 시마네현 츠와노에서 태어난 구와바라 시세이. 그는 1960년 도쿄농업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되기 위해 도쿄사진전문학교에서 1년6개월 동안 사진기초이론과 표현기술을 배웠다.

어느 날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고향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미나마타병 기사를 읽은 그는 강렬한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더니 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갑자기 차내가 밝아지는 것 같았다. 시라누이해(海)에서 발생한 기이한 병은 시작된 지 4년이나 지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생선을 직접 먹은 일이 없는 유아까지 미나마타병에 걸렸다는 내용을 보는 순간 미나마타병에 관한 기록이, 자신에게 그 실마리를 파헤칠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와 하룻밤을 보낸 그는 아시히신문 도쿄 본사에서 고마츠 스네오 기자를 만나 미나마타병의 전모와 문제점을 듣고 포토저널리즘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구마모토현의 최남단에 있으며 가고시마현과 인접해 있는 미나마타에 간 그는 미나마타병으로 판정된 환자 83명 중 33명이 사망하고, 구기노강을 원류로 하는 미나마타강 하구에 잇는 미나마타시립병원에 18명의 환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을 촬영하고 미나마타병이 발명한 마을과 주민들을 만나 본격적인 취재를 하면서 `좋은 젊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괴질이 생기던 초기에 노인은 중풍으로, 어린이는 소아마비로 의심받았으나 그 사람들에게 죽어서도 잊지 못할 무서운 병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지기만 했다. 미나마타병을 취재하던 초기에 그는 환자들의 쓰라린 현장에서 허둥거렸고, 어민들의 흐느끼는 눈물이 자신의 가슴 밑바닥을 휩쓸고 지나갔다.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잘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밥알 하나 제대로 먹을 수 없는 환자, 어린이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즈음 미나마타의 바다는 죽었고 괴질의 원인이 공장 폐수에 포함된 유기수은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미나마타에서 나오는 어패류가 위험하고, 식생활 대부분을 어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주민들의 생활환경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는 급격한 공업화로 인본의 일그러진 사회가 만들어낸, 주민들이 숙명적으로 걸릴 수밖에 없었던 미나마타병은 신 일본질소공장이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해 질소의 폐액을 바다로 마구 흘려보내 해저에 수은을 포함한 수미터의 뻘이 생기면서 어패류를 오염시켜 미나마타병이 생겼음을 취재에서 밝혀냈다. 1962년 9월15일부터 열흘간 후지사진필름전시장에서 그동안 취재해서 찍은 미나마타병의 진상을 알리는 사진전을 열었다.

이렇게 일본사회에 널리 폭로한 그는 일부 사람들의 모함으로 궁지에 몰리기도 했으나 그것이 이 작업을 막지 못했다. 사진전의 파문은 언론을 통해 퍼져 나갔고, 전시장 관람자 수는 끝없이 넘쳐났다. 그와 더불어 `바람직하지 못한 사진전'이라면서 일부 재계 수뇌의 요청이 후지필름회사에 전달되기도 했다. 1956년 5월1일 미나마타병이 괴질로 발견된 지 올해로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구와바라 시세이라는 한 사진가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미나마타 다큐멘터리는 영원할 것이다. 2015년 8월 서울에서 만난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가는 오랫동안 내 이웃에서 얼굴을 익혀온 듯한 인자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의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 `격동 한국 50년'전시차 한국에 온 기회에 인터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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