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어진 공간
휘어진 공간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5.1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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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지만, 이 사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인류는 수십만 년이 걸렸다. 개미의 입장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여기서 내가 말하는 개미는 지능지수가 200정도 되는 개미를 말한다. 이렇게 머리 좋은 개미라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까? 하늘에 날아 올라가 볼 수도 없고, 일생 가 봐야 한 동네를 벗어날 수도 없는 개미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공간에는 1차원, 2차원, 3차원이 있다. 1차원 공간은 실과 같은 선이고, 2차원 공간은 가로와 세로가 있는 면이고, 3차원 공간은 가로세로 높이가 있는 체적이다. 휘어지지 않은 1차원은 직선이고 휘어진 1차원 공간은 곡선이다. 휘어지지 않은 2차원 공간은 평면이고 휘어진 2차원은 울퉁불퉁한 곡면이다. 그런데 휘어지지 않은 3차원 공간과 휘어진 3차원 공간이란 무엇인가? 3차원은 모든 공간을 다 채우는데 다 찬 공간이 휘어지다니, 말이 되는가?

지구 표면은 휘어진 2차원이다. 지구 표면이 휘어졌다는 것은 인공위성으로 지구 사진을 찍어보면 분명해진다. 2차원(지면)은 3차원(지구)의 껍질이다. 3차원에서 2차원을 보면 공간이 휘어져 있는지 평평한지 금방 알 수 있다. 3차원 공간은 4차원의 표면이기 때문에 4차원 사진을 찍어보면 평평한지 휘어져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은 3차원만 인식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이 4차원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4차원 사진은 찍을 수도 없다. 그런 카메라는 없다. 설사 있다고 해도 인간이 그 사진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그래서 휘어진 3차원을 아는 것은 시각적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논리적으로만 가능하다.

휘어졌다는 것을 아는 방법은 무엇일까? 선이 휘어졌다는 것은 한 점에서 멀어질수록 출발점으로부터 일양하게 멀어지는가를 보는 것이다. 직전이라면 그렇다. 하지만 곡선이라면 어떤가? 원이라는 선을 생각해 보자. 원은 출발점에서 멀어지면 계속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지구표면 같은 곡면도 마찬가지다. 한 점에서 출발하여 계속 진행하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공간을 닫힌 공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구 표면은 휘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닫힌 공간이다. 3차원 공간이 닫힌 상태로 휘어져 있다는 것도 한 방향으로 곧게 계속 간다면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우주 공간을 직선으로 계속 앞으로 가면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3차원 공간이 휘어져 있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우주는 둥글고 그래서 직선으로 계속 전진하면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이것이 공간이 휘어져 있다는 의미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중력을 설명하면서 별 주위의 공간이 휘어져 있다고 했다. 별 주위의 공간이 휘어졌다니? 오해하지 마라. 3차원적으로 휘어진 것이 아니라 4차원에서 보면 휘어졌다는 말이다. 물체가 떨어지는 현상을 보고 뉴턴은 지구가 물체를 끌어당겼다고 하는 데 반하여 아인슈타인은 지구 주위의 공간이 구덩이 모양으로 움푹해서 아래로 떨어진다고 했다. 오해하지 마라. 움푹하다는 것이 3차원적으로 움푹하다는 게 아니라 4차원적으로 움푹하다는 말이다. 그게 어떻게 생겼는데? 안타깝게도 보여줄 수 없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모두 물체가 왜 떨어지는지 잘 설명하지만 빛에 대해서 두 이론은 우열이 갈린다. 뉴턴의 중력 이론에 의하면 빛은 질량이 없기 때문에 중력에 영향을 받지 못하지만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별 주위에 공간이 휘어져 있기 때문에 질량이 없어도 휘어져야 하는 것이다.

휘어진 공간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오직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던가? 보이는 것은 허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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