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아버지의 두부
5월, 아버지의 두부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1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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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삶과 죽음, 폭력과 저항의 경계에서 감성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일까.

5월 달력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떠오른 문장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성년의 날 등 감사와 고마움, 그리고 격려와 환희의 감성이 충만할 수밖에 없는 나날을 생각했다. 게다가 푸른 잎과 맑거나 비가 온다 해도 충분히 투명한 하늘을 떠올리면서 아무래도 5월은 감성의 바다에 빠져도 좋을 계절임을 확신했다.

그러다가 아직도 그 정명(正名)이 뚜렷하지 않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을 떠올리면 인간의 감성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부질없는 일인지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 해. 어언 38년이 훌쩍 지난 그 해 5월의 피 냄새는 아직 코끝을 떠나지 않고 있는데, 여태껏 우리는 누가 왜 총을 쏘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남과 북이 경계를 넘나들며 평화와 번영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급속한 성장을 거쳐 민주주의의 전도사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폭력의 근원을 찾아내지 못하는 역사를 살고 있다.

그 해 5월. 떨리는 푸른 청년의 가슴은 학교 교문 앞에 거대하게 웅크린 군용 장갑차의 위협에 벌벌 떨리고 있었고, 바람결에 실려 온 빛고을 광주에서의 피울음을 들으며 저항의 고삐를 결국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운명인 듯 5월에 두 딸을 낳았고, 그 환희의 순간을 기억할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한다.

5월에서 쫓겨난 푸른 청춘의 나는 그로부터 수배와 도피, 그리고 결국 계엄군의 서슬에 몸을 숨기지 못한 채, 자수라는 이름으로 붙들려 여러 날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깜깜한 지하에서 지상으로 끌려나온 뒤 불안한 기다림 끝에 결국 방면이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붙잡힌 날과 조사를 받은 기간, 방면된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도피라는 혁명가적 감성의 과정과 장소, 그리고 당시의 상황은 또렷하게 생각나는데, 그 날짜들은 알 수 없는 것은 아마도 그런 흔적들이 기억조차 하기 싫은 강박관념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도 내가 가장 잊지 못하는 것은 두부이다. 그날, 어찌어찌하여 내가 방면된 날. 반쯤은 넋이 나간 자식의 몰골을 드디어 만나게 되신 아버지가 검정 비닐봉지를 끌러 내놓으신 두부. 풀려난 자식이 다시는 그런 모진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먹으라고 건네신 두부. 나는 그 날 세상에서 가장 씹어 삼키기 어려운 음식이 생두부임을 처음 알았다. 그러면서도 ‘왜 하필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두부였을까?’라는 의문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지금껏 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두부를 어머니가 권했어도 그렇게 목이 메었을까 라는 그 무게의 차이도 여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5월의 그날이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해마다 이 맘 때쯤이면 온몸 구석구석이 결리고 저리는 알지 못하는 증상은 올해도 어김없고, 사람들은 여전히 아직도 그 얘기냐 라며 마뜩찮게 여긴다. 그리고 야박하게 나만 아니면, 나만 살아남았으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부끄러움을 속절없이 드러낸다.

굳이 역사의 진실이거나, 역사적 고통을 외면하는 순간 그 역사는 고스란히 재현될 수 있다는 명제를 거론하지 않겠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고통과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에게 자행된 잔인한 폭력을, 그들 군인들의 표현대로 전혀 무장해제하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그 해 5월 이후 단 한 번도 부끄러움 없는 하늘을 만나지 못했으며, 흑백논리와 빨갱이로 갈라놓을지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 습관화된 자기검열에 빠져 5월의 아름다운 신록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그저 다만 살아가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아! 나도 이제 맑거나 비가 오더라도 마음껏 투명한 5월의 하늘을 제대로 바라보며 살고 싶다. 아주 느릿하게 나무와 풀꽃의 푸른 생명력에 감탄하며 신록을 예찬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먹어볼 수 없는 아버지의 두부를 그리워하며, 아무래도 5월은 온갖 감성이 풍만할 수밖에 없는 계절임을 실감하고 싶다.

이 땅의 모든 죽음이 서럽지 않도록 5월이 진정한 치유와 회복의 계절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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