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나침반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8.05.14 1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변덕스러운 날씨다. 발로 채이고 밟혀 찌그러진 우유 갑처럼 우중충하고 몸이 찌뿌듯하다. 기분전환 할 겸 꽃모종을 구입했다. 흐릿한 구름 사이로 겨우 햇살 한 줌이 비춘다. 옷 벗어 던지듯 화분을 훌렁 뒤집어놓고 흙과 거름을 반죽하듯 섞어놓았다. 아파트임에도 홈 타기를 따라 개미 떼가 줄지어 화분 밑바닥을 돌아 치자나무가지에 줄타기하고 있었다. 참기름 발라놓은 것처럼 번들번들 거리는 이파리, 진딧물 때문에 용케도 알고 찾아들었다. 개미가 집에 모이면 부자가 된다던데 근거 없는 설화지만 그래도 마음이 흔연하다.

한해의 문을 봄이 여는 것처럼 개미 또한 봄부터 대형애벌레를 길러 수컷과 여왕개미가 된 후 혼인비행에 들어간다. 혼인비행이 끝난 후 수컷이 죽는 것만 다를 뿐 개미는 인간조직사회랑 가장 흡사한 곤충이다.

겨울이 되면 깊은 땅속에서 미리 저장해 둔 먹이를 먹으면서 또 이듬해 우화등선을 준비하는 개미. 손톱보다도 더 작은 개미는 봄이면 알에서 애벌레로 여러 번 아픈 허물을 벗으면서 우화등선을 한다. 뿐인가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지하에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버리고 양식과 번데기를 입에 물고 대이동을 한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곤충들의 대이동을 보고 홍수나 지진을 감지했다. 풍수에 의하면 수맥을 좋아하는 개미, 마른 먼지가 몽글몽글 수북이 쌓인 듯한 개미집 아래를 여섯 자 정도만 파 내려가면 물이 있다 하여 우물을 파기도 했지만, 선인들은 수맥이 있어 묏자리는 물론 집 짓기를 피했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세계에 묻어 살면서 해로운 것보다 이로운 것이 더 많은 개미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난 한 마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혈안이 된다. 개미퇴치에 탁월하다는 굵은 소금을 길목마다 싸라기눈처럼 뿌려놓고, 가으내 방충효과가 있다는 은행잎을 깔아놓기도 했다.

`개미와 베짱이'의 베짱이 같은 나. 문학을 한답시고 가슴에 새길 아름다운 한 줄의 언어를 거두고자 밤을 지새우며 앉은뱅이책상에서 졸린 눈을 치켜세우고 글밭 이루기에 바빴었다. 일개미가 일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글 농사에 전력을 다했지만 조급한 마음이 앞선 글 농사는 때때로 빨간 신호등이었다. 자양분도 없는 글밭에서 풍작을 고대하며 미련하게 목이 말라있었다. 되짚어보니 소나기를 피하려 빗속을 뛰어가기에 바빴지 처마 밑에서 잠시 소나기를 피하는 여유와 지혜가 없는 무지렁이이었다. 유충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쉼 없이 아픈 허물을 벗는 개미 `금탑 모으듯'끝없는 노력과 부지런함이 재산임에도 허울 좋은 문학만 좇아간 난 개미 쳇바퀴 돌듯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

개미를 본다. 제 몸보다 더 큰 먹이를 끌고 가는 개미를 가만 보면 미련스럽고 아둔해 보이지만 게으름을 몸에 단 나에겐 개미 근성은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 슬럼프에 빠져 방향 감각을 잃고 엉킨 실타래처럼 술회하는 마음을 안내하는 나침반, 자석의 성질을 이용하여 지구 위에서의 방위를 알아내는 데 사용하는 기구다. 항공, 항해의 진로를 측정하는데 주로 쓰이는 기구로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작은 나침반을 글밭 속으로 밀어놓았다. 때때로 가뭄도 들고 태풍도 불고 그러다 풍년의 맛도 보았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가슴깊이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지길 염원한다. 표류하는 감정에 전류가 흐르고 나침반 바늘이 정곡을 찌른 오늘, 분갈이한 화분을 올려놓고 반들반들 개미길이 난 홈 타기에 굵은 소금 대신 얇은 휴지 한 장을 슬그머니 밀어 넣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