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4차원이다
여기가 4차원이다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5.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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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아마 당신에게 4차원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면 “4차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나오는 그 4차원? 시간이 빠르게 가기도 하고, 느리게 가기도 하고, 공간이 휘어지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보다 더 이상한 그 4차원? 됐다 그래! 너나 하세요!”라고 반응하지나 않을까? 미안하지만 필자는 오늘 바로 그 4차원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4차원은 이상하고 그래서 어렵게만 느껴진다. 어쩐지 걸려들면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아 한 발자국도 그 속으로 들여놓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당신은 이미 4차원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 4차원은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다. 4차원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먼저 차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선은 1차원, 면은 2차원, 체적은 3차원이라고 말한다. 왜 그렇게 말할까? 차원은 공간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고 공간의 위치는 수치로 나타낸다. 위치를 말하기 위해서 숫자 한 개가 필요하면 1차원, 두 개가 필요하면 2차원, 세 개가 필요하면 3차원이다. 4차원이란 위치를 말하기 위해서 숫자 4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승강기를 생각해보자. 승강기를 타고 안내양에게 어디를 가자고 말할 때 숫자 몇 개가 필요한가? 당연히 한 개면 족하다. “15층 갑시다.” 이것으로 내가 가고자 하는 위치가 분명하게 전달된다. 그래서 승강기는 1차원 장치다. 하지만 우리는 2차원 승강기를 만들 수도 있다. 위 아래만 운행하는 승강기가 아니라 위 아래 좌우를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승강기를 생각해 보자. 이 승강기에는 층과 열이 있게 된다. 그러면 내가 가고자 하는 위치를 안내양에게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숫자 몇 개가 필요할까? “15층!”이라고 하면 될까? 그러면 안내양은 “몇 열 15층을 말합니까?”, 하고 물을 것이다. “3열, 15층” 이렇게 말해야 목적지가 분명해진다. 그래서 이런 엘리베이터는 2차원 장치인 것이다. 3차원 승강기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열에다가 행을 하나 더 해야 할 것이다. 수학에서는 행(가로), 열(세로), 층(높이)을 x, y, z로 표시하고 이것을 3차원 좌표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공간의 모든 점은 이 3가지 숫자를 사용하면 모두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공간은 3차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건'을 생각해 보자. 사건을 다루는 사람은 과학자 말고 신문기자도 있다. 기자가 어떤 사건을 보고할 때는 소위 육하원칙에 입각해 보도해야 한다.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가 그것이다. 하지만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와 `어디'뿐이다. `어디'라는 공간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이미 설명한 것과 같이 숫자 3개가 필요하다. 그리고 시간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숫자 1개면 족하다. 그래서 시간은 1차원이다. 공간은 3차원, 시간은 1차원 그래서 사건은 시공간 4차원 현상이다.

과학은 사건을 다루는 학문이다. 기자들도 사건을 다루지만 과학은 인간이 빠진 사건들을 다룬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별이 빛나고,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이 모든 것들이 다 사건들이다. 과학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언제와 어디뿐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세상을 4차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너무 싱거운가? 4차원이라고 하면 뭐 신비하고 대단한 건 줄 알았는데 시간을 포함해서 4차원이라고? 실망스러운가? 그렇다. 4차원이란 3차원 공간에 1차원 시간을 합해서 시공간 4차원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누구도 공간과 시간을 동일한 차원으로 통합해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 시간과 공간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사건을 분석했더니 그 놀라운 상대성 이론이 만들어진 것이다. 시간이 빨리도 가고 느리게도 가고, 물질이 에너지가 되고, 에너지가 물질이 되기도 하는 이상한 세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보다 더 이상한 세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당신이 그 진리를 딛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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