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과 죽음
태어남과 죽음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8.05.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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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서양의 고전 음악 중에서는 물론이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잃을 무렵인 1824년에 완성됐다는 것과 명성 있는 작곡가의 교향곡에 처음으로 기악과 성악이 같은 비중으로 도입됐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 교향곡이 `베토벤 교향곡 9번 D단조'라는 명칭보다 `합창 교향곡'으로 불리며 널리 알려진 것도 바로 제4악장에 나오는 합창 `환희의 송가'때문이다.

합창 교향곡은 1824년 5월 7일 빈에서 초연됐으며, 이날 공연은 베토벤이 12년 만에 처음으로 서는 공식 무대였다. 마지막 악장의 연주가 끝나 청중들이 박수를 칠 때까지도, 청각을 잃은 베토벤이 지휘를 계속하는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번의 기립 박수를 받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황제 부부가 공연장에 입장할 때도 세 번의 기립 박수를 받던 것이 통례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날 공연이 얼마나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고도 합창 교향곡 같은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가 끝난 줄도 모르고 지휘를 했음에도 청중들로부터 다섯 번의 기립 박수를 받은 것은 크고 작음, 가고 옴, 삶과 죽음 등의 극과 극은 서로 통해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지난 9일(현지시간) 스위스 바젤에서 104세의 노인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뒤, 기쁨에 넘쳐서 합창 교향곡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를 부른 일도 삶과 죽음이라는 양 극단이 하나란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이날 영국의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구달은 안락사를 앞두고 기자 회견을 열어 “의학적 도움을 받는 자살이 중환자들의 마지막 수단뿐만이 아니라 일반 환자들에게도 더 널리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삶의 충만함과 열정으로 “우리 모두 정열에 취해 빛이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자!/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다시 결합시키는 도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라는 환희의 송가를 부르고 죽음을 맞았다.

스위스에서는 법적으로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해마다 말기암 환자 등 회생 가능성이 낮은 불치병 환자들 수백 명이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를 찾아온다. 그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구달'의 경우처럼 청각, 시각, 운동 기능 등에 약간의 장애가 있을 뿐, 불치병 환자가 아닌 초고령 노인들도 있다. 초고령 노인들의 안락사를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라이프 써클'이란 단체가 있다. 이 단체와 연계해 초고령 노인들의 안락사를 돕는 `엑시트 인터내셔널'이란 해외 지원 단체도 있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도 불치병 환자뿐만 아니라, 초고령의 노인들에 대한 법적 안락사 허용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때다. 삶과 죽음이 둘 아님을 깨닫고, 가장 알맞은 때에 스스로가 육신을 훌훌 벗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자의지로 당당하게 선택하는 안락사도 굳이 `생명의 존엄성'운운하며 무조건 법으로 금지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인생의 고달픔과 외로움에 지친 노인들의 충동적 자살과 스스로가 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보다 긍정적이고 열정적으로 생을 마감하려는 선의지는 전혀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空手來空手去是人生(공수래공수거시인생) 生從何處來(생종하처래) 死向何處去(사향하처거)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 태어날 때는 어느 곳에서 왔으며, 죽을 때는 어느 곳으로 가는가? / 태어남은 한 조각의 구름이 이는 것, 죽음은 한 조각의 구름이 스러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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