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금수저들에게
이 땅의 금수저들에게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5.0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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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먼저 억세게 운 좋은 이 땅의 금수저들에게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게 한 당신들의 부모와 조부모인 창업주들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창업주들은 피와 땀과 열정과 불굴의 투지로 자수성가한 의지의 한국인이었고, 2세인 당신들의 부모 또한 그런 창업주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배우며 자라 물려받은 가업과 기업을 확장시키려 무던히도 애쓴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도전과 분투에 힘입어 일제 수탈과 6·25전쟁으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세계 12대 경제강국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해마다 보릿고개 때가 되면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민초들이 삶의 질을 추구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경유착, 노동착취, 세금탈루, 미투와 값질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없진 않지만 말입니다.

그래요. 당신들의 조부모와 부모 세대가 성공 신화를 써내려갈 수 있었던 건 정부의 경제제일주의 정책과 근로자들의 헌신과 국민의 협조와 묵인 덕분이었습니다. 국가와 근로자와 국민의 고마움을 결코 잊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3세들입니다. 그들은 부모님 대에도 누리지 못했던 엄청난 부와 우월적 환경 속에 성장해서 갑질이 자신들의 특권인양, 자신들은 그리해도 되는 특별한 사람인 양 안하무인(眼下無人)하고 기고만장(氣高萬丈)하기 때문입니다. 민초들의 공분을 산 대한항공 조씨 자매들의 땅콩 회항 사건이나 물벼락 갑질이 이를 웅변합니다. 오늘도 죄의식 없이 자행하는 금수저들의 갑질행위에 고통 받고 상처 입는 선량한 을과 병들이 한숨소리가 하늘을 찌릅니다.

그럼에도 이를 단죄할 법의 잣대는 여전히 유전무죄이고 무전유죄이니 기가 찹니다. 문제가 불거지면 가해자인 금수저들은 피해자들에게 굶주린 개돼지에게 먹잇감을 던져주듯 뭉칫돈을 던져주며 꼬리 치게 만들고, 사법당국 또한 좋은 게 좋다고 어물쩍 넘어가니 말입니다.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물벼락 갑질도 결국은 그렇게 유야무야될 터이고, 자매들이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사퇴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국민의 관심이 멀어지면 슬그머니 경영일선에 복귀할 터. 그러면 자존심을 저당 잡힌 직원들이 앞다투어 머리를 조아릴 테지요. 잘 보여야 자리보전도 하고 승진도 할 테니까요.

각설하고 금수저란 부모의 재력과 능력이 탁월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음에도 풍족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들을 통칭합니다. 유럽 귀족층 자녀들이 태어나면 유모가 젖을 은수저로 먹이던 풍습에서 유래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에서 온 말입니다. 부모의 신분과 재력에 따라 인생의 출발지점이 달라지는 현실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표현하는 이른바 금수저·은수저·동수저·흙수저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청년실업·부익부 빈익빈 등의 사회 문제와 맞물리면서 2015년부터 급속도로 확산된 사회이론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금수저로 태어난 것은 축복입니다. 하지만 흙수저와 별반 다를 게 없으니 금수저로 태어나게 해 준 부모님과 공동체에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금수저답게 살려면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함량이 떨어지면 경영일선에 나서지 마세요. 지분 배당만 받아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으니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사회봉사활동이나 취미생활이나 하며 사세요.

영국의 왕세자들처럼 자원입대해 사지로 뛰어들진 못할지라도 최소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살기 바랍니다. 그것도 어려우면 국민의 4대 의무만이라도 성실히 이행하며 살기 바랍니다. 인간냄새 나는 금수저, 금수저 값을 하는 멋진 금수저이기를.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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