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생명이다
초록은 생명이다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18.05.0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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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실내에서 보는 초록은 더 싱그럽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왠지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부엌 한쪽 구석에서 관심 밖이던 고구마가 싹을 내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문득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나는 거였다. 곧바로 수경 분을 여러 개 마련해서 창가에 올려놓았다. 유리그릇에서 투명하게 비치는 고구마의 생육상태를 관찰하는 일이란 또 다른 즐거움이 되기 시작했다. 잎이 얼마나 자라 가는지, 뿌리는 어떻게 뻗어 가는지, 새로운 볼거리였다.
 땅에서 사는 것만큼이야 하겠는가. 유리그릇 안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이 신기하고 대견키만 하다. 언젠가는 다할 수명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푸르게 살아 있으니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기로 했다. 오직 내 눈에서 살아 있다는 즐거움만 떠올리기로 했다. 이렇게 사소하고도 우연한 기회가 내게 또 다른 울림을 가져다줄 줄이야.
 신기한 것은 생명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거였다. 원래 고구마의 생육방법은 아니지만 푸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선했다. 담겨진 분 안에서 하얀 실뿌리를 내리고 밖으로는 입과 줄기를 늘여가는 상태가 생명에 대한 의기라고나 할까. 절대로 하찮은 광경이 아니라는 기분이었다. 반면 내게도 저런 삶의 의욕이 얼마만큼 내재해 있는지 돌아본다.
 꽤 오랫동안 식당업을 해오고 있다. 이십 년을 훌쩍 넘기면서 오직 한 길만 걸어왔다. 아등바등 사느라 세월 가는 줄도 몰랐다. 나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조차 부족했었다. 그렇게 보낸 시간 속에서 어느새 몸과 마음은 저만큼 약해져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꾸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직업에 대한 회의가 밀려와 있었던 것이다.
 고구마의 새싹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리 하찮아도 생명이 있다는 것은 축복임을 알았다. 나름 잎을 키우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 귀감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 의미에 절대적인 실감을 하고야 말았다. 쉽게 생각해서 만약 내가 몸져누워 있는 처지라면, 일하고 싶어도 가능키나 하겠는가. 그리고 남들이 말하는 이 좋은 세상을 함께 공유할 수 없을뿐더러 삶의 환희에서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까지도.
 아주 작은 것에서 희망을 찾게 된 기회였다. 수경분에서 자라나는 고구마의 싹을 볼 때마다 그동안 내가 왜 그리 힘들어했던가 싶다. 생명이 있음은 신성한 것이며, 반대로 죽음은 모든 것을 정지시키는 절대적인 시작에 드는 일이란 것도 알았다. 지금껏 지켜온 삶이 멈춘다고 가정한다면 얼마나 후회되는 일이 많을까 싶다.
  고구마는 지금 창가에서 잎과 줄기를 하루가 다르게 키워내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럽다. 바로 생명의 환희였다. 자활의 능력이 다해서 언젠가는 버려지게 될지라도 혼신을 다하는 모습으로 인해 중요한 한 가지를 배운 셈이다. 이제 살아 있는 신성함을 내 삶과 대비시킨다. 나도 저렇게 의식이 늘 싱그럽도록 깨어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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