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죄인가?
가난이 죄인가?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8.05.0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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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금란 부장(취재3팀)
김금란 부장(취재3팀)

 

당연한 일이 당연시 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보면 손잡아 주고 넘어진 아이가 있다면 일으켜 세워주는 게 미덕이었다.

부모에 대한 효를 행하는 일 역시 당연한 인간의 도리로 여겼다.

하지만 요즘은 당연한 일이 특별한 일이 됐고, 상까지 제정해 홍보해야 할 만큼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효행상, 효부상, 장한 어버이상 등 각종 상을 수여하는 시상식이 넘친다.

그런데 박수를 받아야 할 수상자들이 언제부턴가 얼굴을 공개하기를 꺼리고 있다.

충북도교육청이 올해로 16년째 이어온 충북학생 효도대상의 경우 지난해부터 얼굴 공개를 꺼리는 수상자들로 인해 이름을 비공개하고 있다. 수상자들은 시상식에 얼굴을 내미는 것도 이름 석자 공개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이런 사정으로 도교육청은 수상자들의 성씨만 공개한다. 학교명도, 효행 내역도 비공개하고 있다.

지난 2일 도교육청에서 열린 제16회 충북효도대상 시상식장에 참석한 수상자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수상자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에 충분한 데도 말이다.

올해 섬김상을 수상한 초등학생 서모양은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추락사고로 다친 아버지와 떨어져 조부모와 생활하면서 틈틈이 농사와 가사일을 돕는 것은 물론 방학 때는 인천에 사는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었다.

효행상을 받은 고등학생 박모군은 간암으로 위독한 아버지에게 간을 이식해 준 것은 물론 어려워진 가정 형편으로 가장 역할을 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가사일과 동생을 정성껏 돌봐왔다.

수상자 8명 모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불편한 부모를 묵묵히 돕고 모범적인 생활을 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모자랄텐데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상을 받는 기쁨보다는 자신의 불우한 환경이 세상에 공개된 후 감내해야 할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걱정해야 한다.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형편이 죄는 아니지만 사회는 집안 배경에 따라 색안경을 쓰고 사람을 평가한다.

오죽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돈이 있으면 무죄로 풀려나고 돈이 없으면 유죄로 처벌받는다)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몇해 전 일이다.

중학교 입학식을 하루 앞둔 한 여학생의 집에 불이 났다.

그 여학생은 조부모와 겨우 몸만 빠져 나왔지만 세간살이는 모두 재가 됐다. 화재사고로 조부모는 손녀가 입학식에 입고 갈 교복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속사정을 알게 된 학교에서는 교직원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벌였고, 재학생들은 저금통까지 들고 와 성금에 보탰다.

문제는 그 돈을 여학생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혹시나 상처를 받을까 싶어 교직원들은 망설였다. 당시 해당 학교 교장은 그 여학생을 교장실로 불렀다. 그리곤 설득했다.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모은 성금을 받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도움을 준 사람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한 뒤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했을 때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말고 손을 내밀면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결국 그 여학생은 성금을 받았고 반드시 힘든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또한 부끄러워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명희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처럼 넘치게 누리면서도 갑질 논란으로 연일 뉴스에 이름을 장식하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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