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것
가족이라는 것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08 2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홀로 계신 어머니를 뵙고 왔다. 늘 그렇듯이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신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말문을 끝내지 못하고 잡은 손이 떨리는 만큼, 내 마음도 깊게 떨린다.

요양원이라는 기가 막힌 현대적 편의시설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지척인데도 자주 찾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어버이날이라는 반 강제적 통과의례 앞에서 겨우 찾아간 길. 게다가 이런저런 핑계로 아내와 두 딸을 대표해서 혼자 어머니를 뵈러 가는 길은 차라리 고통이다.

어쩌지 못하는 일에 짜증이 나는 경우가 어디 나 하나뿐이랴. 그게 세월 탓일 수도 있고, 아니면 먹고사는 문제이거나 형제 자매간의 사소한 갈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양원이라는 이름의 설익은 시설이 골목골목마다 늘어나는 모양새를 보니 부모와 자식 사이의 어쩌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보통은 아닌 듯하다.

이번 주 <수요단상>을 앞두고 꽤 많은 고민과 갈등을 했다.

되돌릴 수 없는 남과 북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생각. 지방선거를 앞둔 세태. 재벌 가족의 상상하기 어려운 갑질. 드루킹이라는 해괴망측한 SNS의 반칙 등 수많은 이슈가 세상을 종횡무진하고 있고, 무엇보다 오늘은 불과 1년 전, 지금처럼 눈부신 문재인 정부의 탄생과 촛불혁명의 일정한 완성을 기릴 수 있는 날이 아닌가.

그런 일정부분 미래지향적일 수 있는 이슈들 대신 과거로의 회귀가 불가피한 가족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거기에는 내 어설픈 개인적 가족사도 드러날 것이며, 그리고 패륜에 가까운 불효이거나 통과의례적 흉내만 내고 스스로를 만족해하는 가증스러움이 드러날 수 있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기껏 생과자 몇 개와 어쭙잖은 봉투, 생경하기 그지없는 카네이션을 들고 매일 매일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홀연 찾아가 자식의 도리를 다했노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는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요양원 침대 모서리에 겨우 걸터앉아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는 아들자식에게 어머니는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은 말을 하신다. 그토록 숱한 외로움의 나날에서도 여전히 8할이 자식들 걱정뿐인데, 성인이 된 자식 둘을 거느리고 있는 나는 여전히 짧다.

아! 어머니는 자꾸만 쪼그라드는 몸에서도 가슴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계시는가.

갓난아기 때, 먹고사는 일이 화급해서 그저 가게가 보이는 방문 앞에 뉘어 놓기만 했음에도 방글거리던 순한 아기를 기억하고, 치마꼬리를 꼬옥 붙잡고 놓을 생각이 없던 내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아직 잊지 못하고 계신다. 어찌어찌하여 가계가 크게 기운 내 청춘의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계에 보탬을 주고 대학이며 대학원의 학비를 충당했던 대견함으로 이어지는…. 어머니에게 자식은 참 자랑과 칭찬거리가 넘치는 유일한 우주(宇宙)로 남아있을 뿐이다.

가족이라는 것. 그 운명적 연결고리에 카오스(혼돈)는 있을 수 없다는 건 착각이다. 새로운 질서, 코스모스를 만드는 새로움과 생명력을 쉽게 만들 수 없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 특히 기력이 날로 쇠잔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닌가. 그러니 그 앞에서 발전이거나 사랑이 깊어지는 것은 남은 삶이 많은 자식의 몫이 아니라 가슴에 기쁨이거나 회한, 또 그리움과 외로움이 많을 어머니로부터 더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 그리고 혹시 나에게로 쏟아질 수 있는 비난을 겨우 면피하기 위해 쫓기듯 다녀온 어버이날 면회의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 없이 지냈던 수많은 어머니와의 나날들이, 그 무질서로 착각했던 날들의 이야기가 어머니의 가슴속에 얼마나 아름답고 깨끗하게 차지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그리하여 그런 소중한 기억들을 차곡차곡 끄집어내며 들려주고 싶은 간절함을 모른 체했던 내 잔인함을 폭로한다.

그러고도 밤이 되면 나는 다시 텅 빈 집으로 돌아갈 것이며 어머니는 또 홀로 남아 불면의 밤을 헤아리실 터인데….

날이 밝으면 나는 또 공연한 세상일을 걱정하며 자본주의 세계에 갇힐 것이다. 아! 우리의 코스모스, 그리고 여전한 카오스. 가족이라는 것.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