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8.05.0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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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얼마 전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에 다녀왔다. 두 분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 주셨다. 평소에 자주 걸으셔서 성큼성큼 앞서 나가고 다리 아픈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수줍은 신혼부부처럼 손 꼭 잡고 하트도 날리며 사진 찍어달라고 하셨다. 꽃향기 맡으며 감탄사를 쉴 새 없이 날리는 엄마는 마냥 소녀 같으셨다. 한 달에 한 번 모시고 다녀야지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우연히 정호승 시인의 동시집`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를 펼쳤는데 시인의 말이 깊은 울림을 준다.“이 시집을 읽으면서 잠시 엄마 품에 안겨 잠들어보세요. 그동안 참았던 서러움의 눈물이 다 녹아내리고 세상을 살아갈 힘과 사랑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엄마 무릎에 대고 누워 잠든 적이 언제였을까? 엄마랑 나란히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때가 언제였을까? 내가 힘들 때 토닥토닥 위로해 주고 힘을 주시는 분은 늘 엄마였다.

어릴 적 엄마는 수챗구멍에 뜨거운 물을 붓지 못하게 하셨다. 하수구에 사는 생물들이 놀란다는 이유였다. 또한 밥을 드실 때마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먹을 밥은 남겨 놓으셨다. 밥이 부족해 엄마가 덜 드시는 날도 있었다. “엄마를 따라 산길을 가다가/ 무심코 솔잎을 한 움큼 뽑아 길에 뿌렸다/ 그러자 엄마가 갑자기 화난 목소리로/ 호승아 하고 나를 부르더니/ 내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니는 누가 니 머리카락을 갑자기 뽑으면 안 아프겠나/ 말은 못 하지만 이 소나무가 얼마나 아프겠노/ 앞으로는 이런 나무들도 니 몸 아끼듯이 해라/ 예, 알았심더/ 나는 난생 처음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 눈물이 글썽했다.”

부모님은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꽃 한 송이 꺾지 않으셨고, 다른 사람이 힘들게 농사지은 고구마 한 톨 탐하지 않으셨다. 삶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법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셨다.

동시를 읽으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유년시절의 추억도 떠올리게 된다.

시인의 말처럼 동시를 읽으며 잠시 어린이가 되어도 좋다. 이 시집은 특히 어른이 읽으면 좋을 글이 가득하다.

사계절의 시작`봄'이라는 단어는`~을 보다'에서 어원했다고 한다. 산과 들, 주변에 피어난 꽃, 연두빛 나뭇잎을 많이 보라는 의미에서 봄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오늘은 어버이날! 더 늦기 전에 부모님 모시고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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