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받든다는 것
뜻을 받든다는 것
  •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8.05.07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유의 숲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7남매 장남으로 태어난 저는 어려서 병약해 밖에 나가 친구들과 뛰어놀지 못하고 방안에서 어머님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가 고파도 “엄마 배고파” 어디가 아파도 “엄마 아파” 대부분 아이들이 그러면서 자라겠지만 어머님은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였습니다.

밖에 나가도 친구들은 자기들끼리만 놀면서 시원찮은 저를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훌쩍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엄마 애들이 나하고 안 놀아줘”하고 이르면 어머님은 “가서 혼내 주어야겠다”하시며 친구들에게 가서는 “우리 형기하고 같이 놀아라. 그러면 나중에 맛있는 것 많이 줄게.” 그러면 친구들은 먹을 것을 준다는 말에 저와 놀아주곤 했습니다.

중학교는 집을 떠나 도시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제 뜻을 받아 줄 누구도 없었습니다. 모든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만 했습니다. 아침에 지각하지 않게 일어나는 일도, 빨래도, 공부도 스스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저는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없는 것은 배워서라도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것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더라고요. 그럴 때면 여러 사람의 지혜나 힘을 빌리거나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려면 명심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상대방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내가 어느 방면에 어떻게 힘을 보탤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 즉, 그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해 입안의 혀처럼 도움을 준다면 상대방도 기분이 좋고 도와주는 사람도 자신이 다 이룬 것처럼 신명이 날 것입니다.

어렸을 때 울음소리만 듣고도 내가 어째서 우는지 아셨던 어머니처럼 상대방의 눈빛만 보아도 그의 뜻을 알아주는 것이 함께 일하거나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한집에 같이 사는 가족들끼리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럼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 왜 그렇게 도움을 주지 못할까요?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들어서 내 상식에 비추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없었으면 내 주장도 없을 것이며 상대방의 결정이나 행동들이 최고의 모습으로 비쳤을 것입니다.

내가 없는 듯 도와주며 함께하면 상대방은 나로 인해 천군만마를 얻은 듯 살 것입니다. 세상에 없는 듯 살면 천하가 다 내 것이 될 것입니다. 내가 없는 듯 세상을 살아갈 때 나로 인해 상대방은 빛이 날 것입니다. 물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기에 어떠한 것을 만나도 화합하며 물을 만난 상대방은 새 힘을 얻습니다. 공기 또한 자신의 주장이 없기에 세상 모두가 공기를 어떻게 사용할지라도 그대로 응해주어 사용하는 모두가 다 좋아지게 합니다.

상대방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되는 것입니다. 내 주장이 없는 듯 상대방을 도와주니 상대방은 나를 남이라 여기지 않고 자신과 둘이 아닌 하나로 알고 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잘 되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내가 없이 살거나 세상 모두를 다 자기로 알고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 소중히 여기고 받들어 주어 자식들이 이만큼 성장하도록 낳고 기르고 가르쳐주셨으니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넓습니까? 자식들은 그 은혜를 이생에 다 갚지는 못해도 함께 사는 모두에게 잘난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상대방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해 그 뜻을 따라주는 가운데 서로에게 기쁨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