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해, 통일을 향해
평화를 위해, 통일을 향해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0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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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지난주 판문점에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1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북정상회담의 뒷이야기들이 이어지면서 감동을 주체하기 힘들다. 지난 금요일 남북정상회담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혼자 TV를 보며 눈물을 흘린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이를 먹어가는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그때의 영상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보니 그때의 감정이 나이 탓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나보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남과 북이 보여준 평화의 몸짓은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이 만남이 우리 민족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세계사에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더 두고 봐야하겠지만 남과 북이 한민족임을 깨우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같은 문화적 공감대를 가진 한 민족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통역이 없는 정상회담, 격식을 넘어선 정상들의 모습은 우리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들을 깨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의 이데올로기와 체제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하며 상대방은 제거되어야할 악의 세력으로 간주하고 비난해왔다. 그러다가도 조그만 대화나 협력의 기회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의 손을 잡고 근거 없는 희망에 들뜬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15년 전 북한을 다녀온 이후로는 확신에 가까운 희망을 품게 되었다.

2003년 10월 남북방송인토론회 참석차 평양에 갔었다. 인천에서 출발해 서해직항로를 따라 평양의 순안공항까지 날아가는 행운을 누렸다. 비행기가 북한 영공을 날 때 눈 아래 펼쳐지는 북한의 산하를 보며 느꼈던 벅차오르는 감격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삼지연에서 오른 백두산의 장엄한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끝없이 이어진 고원을 지나 마침내 오른 눈 덮인 백두산 천지는 나의 능력으로는 어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북한에서의 볼거리와 경험은 모두 신기하고 감동적이었지만 평양에서 만난 버스기사가 주었던 감동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우리 일행의 버스를 운전해주던 기사는 코가 빨갛고 아주 선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우리를 맞아 주었다. 어느 날 기사가 깔고 앉아 있는 방석에 눈길이 갔다. 방석의 한 귀퉁이에 씌어 진 희미한 글귀가 눈에 띄었다.

`사랑하는 운전수 아바이에게'

전율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애써 벅찬 가슴을 누르며 무슨 방석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학에 들어간 딸이 만들어 주었노라고 자랑한다. 딸이 운전하는 아버지를 위해 정성들여 방석을 만들어 주었고, 아버지는 그 방석을 자랑스럽게 깔고 앉아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세상임을 깨달았다. 분명 북한도 이렇게 소박하고 평범한 시민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그곳도 분명 따뜻한 사람들이 정을 나누며 사는 인간세상임이 틀림없는데, 그동안 북한에 대해 가졌던 막연하고 천박한 편견이 부끄러웠다.

대북, 대남 확성기 철거 같은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들이 하나하나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다. 평창올림픽 단일팀 경기를 시작으로 함께 노래하고 함께 웃으며 우리는 정상들의 만남까지 갖게 되었다. 우리가 소망하는 이 길은 이제 되돌아가서도 멈춰서도 안 되는 길이다. 이렇게 가까운 길을 왜 이리 멀리 돌아 왔는지 모르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말처럼 한발자국 씩 앞으로만 조심스럽게 내딛어야 한다. 어머님을 모시고 평양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을 수 있는 소박하지만 매우 큰 꿈을 꾸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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