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同床異夢) 일지라도
동상이몽(同床異夢) 일지라도
  • 김성일<보은 아곡 은성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8.05.03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자의 목소리
▲ 김성일

우리 집에는 아들이 셋이나 됩니다. 고등학생들인 두 아들 밑으로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가 있지요.

막내딸을 기대하며 얻은 딸 같은 아들입니다. 형들의 자취생활 때문에 막내는 주말에나 형들과 상봉을 합니다.

나이 차이가 좀 있어서 형들이 그렇게 잘 놀아주지 않아도 형들을 얼마나 좋아라 하는지 형들을 많이 기다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형들은 막내처럼 그렇게 애틋함은 없고 귀찮아하는 모습을 보일 때 가 많습니다. 동상이몽이죠.

그런데도 서로 잘 통하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잘하는 때가 있는데 관심사가 같은 게임이나 영화 이야기를 할 때입니다.

나이 차이가 나도 주제가 같은 이야기에는 얼마나 형제들의 우애가 깊은지 밤늦게까지도 재잘재잘 잘도 떠듭니다.

하지만 그 같은 주제 외에는 얼마나 자주 다투고 싸우는지 물론 당하는 건 막내요 혼나는 건 형들이라 깊은 줄만 알았던 우애는 어느새 금이 갑니다.

재미있는 것은 다시 화해하기 어려울 듯싶은데도 또 어느샌가 보면 다 같이 둘러앉아 게임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전 세계가 보는 가운데 남북의 정상들이 만났습니다.

만남이란 일이 이토록 감격스러울 수도 있는 것인지 온 나라의 국민은 물론하고 전 세계가 감동하고 감격해 하고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만남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만나지 않으면 대화할 수가 없고 대화가 없으면 결국은 소통은 힘들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만남은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북의 행동으로 봐서는 사실 안심할 수도 없지만 동상이몽 일지라도 만남의 시작이 역사를 다시 쓰는 작은 불씨가 되기를 소망하여 기도합니다.

예수님과 만나 3년이란 세월을 동고동락한 제자들조차도 동상이몽으로 정치적으로 높은 자리에 서로 올라가기를 다투고 갈등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은 만남의 역사를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끝까지 만나주셨고 포기하지 않으셨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믿음은 관계인 것 같습니다. 관계는 만남이며 동상이몽이 아닌 한마음을 품는 것이 진정한 만남의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만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찾아와 우리의 문을 두드리고 우리와 함께 만나 동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때로 우리는 동상이몽으로 예수님과의 만남을 기대합니다.

우리의 욕심과 욕망으로 한참 기대하지만 예수님은 더 낮아짐과 헌신의 모습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동상이몽 일지라도 예수님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한번 만나고 두 번 만나고 자꾸 만나다 보면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 무너지면서 주님의 마음을 알아가기 시작하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동상이몽이 아닌 사랑의 마음으로 예수님 만나 행복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