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의 봄
판문점의 봄
  • 김기원<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5.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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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눈 녹인 산골짝에 꽃은 피는데/ 설한에 젖은 마음 풀릴 길 없고/ 꽃피면 더욱 슬퍼 삼팔선의 봄/ 죽음에 시달리는 북녘 내 고향/ 그 동포 웃는 얼굴 보고 싶구나’

김석민 작사 박춘석 작곡의 ‘삼팔선의 봄’2절 가사입니다. 최갑석이 노래한 6.25 전쟁가요이지요. 해묵은 이 노래가 자꾸만 뇌리를 스치는 건 삼팔선보다 더 엄혹했던 휴전선에 봄이 왔기 때문입니다. 아니 분단의 비극과 대립과 전쟁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 갈망했던 봄의 정령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아닌 희망찬 춘풍이 판문점에서 발원되어 한반도 방방곡곡으로 불어대고 있어서입니다.

그래요. 남과 북의 최고 지도자가 휴전한 지 65년 만에 처음으로 비운의 땅 판문점에 마주앉아 훈풍을 일으키고 있어서이지요.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회담과 ‘판문점 선언’은 한국인은 물론 평화를 소망하는 전 세계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감동의 드라마였습니다. 남북 간 화해와 신뢰와 교류의 물꼬를 트는, 나아가 통일의 씨앗을 파종하는 세기적인 회담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렇듯 ‘판문점의 봄’은 평화입니다. ‘삼팔선의 봄’노랫말처럼 죽음에 시달리는 북녘 동포들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하게 하는 회담이었고, 잘하면 몸서리쳐지는 핵과 미사일의 공포에서 또한 남과 북이 공멸로 가는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싶은 희망과 안도감을 주었거든요.

특히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손을 꼭 잡고 판문점의 남쪽 땅과 북쪽의 땅을 건넨 모습과 도보다리 벤치에서 두 정상이 심중에 있는 말을 주고받는 광경은 압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전을 아리랑으로 시작해 아리랑으로 마무리한 것도 감동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자유의 집 앞에서 의장대를 사열할 때도, 김 위원장을 북으로 환송할 때도 아리랑을 연주했으니 말입니다.

남과 북이 만나는 자리에 아리랑을 연주하기 시작한 건 1953년 7월27일 판문점 휴전협정 때부터입니다. UN과 북측이 회의를 마치고 나오자 우리나라와 북의 군악대가 동시에 아리랑을 연주했지요. 사전 협의가 없었는데 이심전심이었던 거죠. 판문점 회담과 선언에 세계 유수의 국가와 언론들이 찬사를 보냈는데 특히 가톨릭 교황청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에요.

4월 29일 로마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도들에게 ‘이틀 전의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나온 긍정적인 결과에 진지한 기도를 보태고자 한다’고 말씀하신 뒤 ‘핵무기에서 자유로운 한반도를 향해 성실한 대화에의 길에 오르고자 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떠맡은 용기 있는 약속을 찬양한다’며 두 지도자를 상찬하셨거든요. 교황님은 또 ‘평화로운 장래에 대한 희망이 어긋나지 않기를 바라며 또 이 같은 긴밀한 공조가 사랑하는 한국인들과 전 세계가 혜택을 보도록 지속하기를 갈망한다’고 하셨지요.

참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게 없는 건 아닙니다. 지난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어렵사리 평화의 물꼬를 튼 바 있지만 결과는 안타깝게도 핵무장과 미사일 개발로 돌아왔으니까요.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인 위장평화쇼’라고,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로드맵 없는 퍼주기만 하는 선언’이었다는 자유한국당의 비난이 야속하겠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바랍니다. 노벨평화상은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받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씀에 기대를 걸지만.

아무튼 북·미 정상회담이 잘 추진되어 한반도에 핵을 완전히 제거하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남과 북이 함께 번영의 길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판문점의 봄’이 한반도 나아가 지구촌의 봄이 되도록.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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