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도 어두움이 필요하다
학교에도 어두움이 필요하다
  • 양철기<원남초 교장·교육심리박사>
  • 승인 2018.05.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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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보는 세상만사
▲ 양철기

백화점 내 소위 명품관이라는 곳을 들어갈라 치면 용기가 필요했던 경험이 있다. 전시 상품들에 매겨진 액수에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명품관의 조명이 일반 매장보다는 어두웠다. 1998년 생애 처음으로 미국에 가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가 집들은 크고 멋진데 어둡게 산다는 것과 우리처럼 거실이나 천장에 조명이 없다는 것이었다.

며칠 전 싱가포르 난양공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공동연구진의 조명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하이힐처럼 기능보다는 스타일을 더 중시하는 상품이라면 매장의 조명이 더 어두울 때 판매가 더 잘된다는 것이다. 반면 기능이 우선시되는 운동화는 매장이 더 밝은 곳에서 판매고가 올라간다.

스타일이 중시되는 명품이나 하이힐 등은 고객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쇼핑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두운 곳에서는 남들이 다 인정하는 기능보다는 자신만의 욕구를 충족시킬 상품을 먼저 구매한다는 것이다. 기능성이 뛰어난 등받이 의자와 좀 불편하지만 스타일이 좋은 의자를 판매할 때 어두운 곳과 밝은 곳에서의 판매량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어두운 조명 아래서는 불편하더라도 스타일이 좋은 의자의 판매량이 많고 밝은 곳에서는 기능성이 뛰어난 의자의 판매량이 많아진다. 이들 연구진은 신입사원 선발 면접장의 조명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결과를 발표했다, 능력 있는 사람과 재미있는 사람 중 한 명을 뽑을 상황에서 어두운 곳에서는 재미있는 사람을 뽑을 확률이 높았고 밝은 곳에서는 능력이 높은 사람이 뽑힐 가능성이 컸다.

이렌느 황 난양대 교수는 “어두운 곳에서는 사람과 사람과의 감정적 연결이 끊어지거나 느슨해진다.”라고 했다. 어두운 곳에서는 다른 사람의 감정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져 자신의 욕구를 우선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경험을 많이 한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햇빛이 훤하게 비치는 대낮에 이른바 `낮술'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보다 대낮은 일단 술을 마실 분위기(조명)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크다. 술을 마시려면 적당히 은은한 조명에 술을 마시는 테이블 이외에 주변은 다소 어스름하게 어둠이 장막처럼 깔려줘야 제대로 술 마실 분위기가 난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잘되는 주점의 조명은 가능한 테이블에 가깝게 내려와 국부집중 조명을 의도적으로 연출하게 만들어 준다. 테이블 외의 주변은 어둡게 만들고 술 마시는 당사자들 자리 주변만 뭔가 보이지 않는 막을 씌운 것 같은 조명을 연출하게 된다. 이 조명은 사람들이 오로지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기울이고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학생들이 온종일 머무는 학교라는 공간으로 돌아가 심리과학적인 눈으로 공간조명을 바라보자. 고등학생은 밝은 형광등 교실에서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주변 친구들을 의식하고 감정교류를 하며 지낸다. 기나긴 감정교류로 인한 탈진(burn-out)은 청소년 시기에 정체감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하기에 학생들에게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오롯이 자기감정에 충실하며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개인공간이 필요하다. 약간의 위험성이 있을 수 있으나 학생들이 편안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분리된 공간은 필요하다. 그곳이 화장실이 될 수 있고 도서실이 될 수도 있다. 그곳의 조명은 심리과학적으로 사용자에게 최적의 편안함을 제공해 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학교는 기능성과 스타일을 모두 소중히 여기는 공간이기에, 학교에도 어두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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