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잔인한 5월
취준생 잔인한 5월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8.05.01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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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가진 게 없는 사람은 안다.

남에게 손 내미는 게 죽는 것보다 더 잔인하다는 것을.

돌고 도는 게 돈이라지만 있는 사람에겐 넘쳐서, 없는 사람은 없어서 사람 구실도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에게 힘든 5월이 왔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감사할 일도 많고 돈 쓸 일도 많은 데 주머니가 가벼운 취준생들에게는 보릿고개를 넘는 것보다 더 힘든 시기다.

취직 못 한 게 죄는 아니지만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하지 못한 것처럼 주눅들게 만든다.

신의 직장으로 꼽히는 공기업 직원의 평균 연봉이 7851만원으로 집계됐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공개한 `2017년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35개 공기업 직원 평균연봉은 7851만원으로 나타났다.

공기업 중 임금 수준이 가장 높은 `TOP 5'는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9228만원), 한국서부발전(9150만원), 한국마사회(8979만원), 한국동서발전(8950만원), 한국감정원(8934만원) 순이었다. 한국투자공사를 비롯해 공공기관 6곳은 직원 평균연봉이 1억원을 넘었다.

잡코리아가 올 상반기 신입직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 2293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입사를 선호하는 기업으로는 공기업(32.1%)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대기업(31.1%), 중소기업(19.7%), 외국계기업(17.1%) 순이었다.

구직활동을 위한 입사지원서에 게재돼 있는 현실적인 희망연봉 수준은 2400만원~2600만원(14.2%)이라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이어 △2200만원~2400만원(13.3%) △2600만원~2800만원(12.3%) △2800만원~3000만원(10.8%) 순이었다.

공기업 평균 연봉의 3분의1에 불과한 연봉을 받고 싶은 소박한 꿈을 꾸는 취준생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소식은 심심하면 터지는 채용비리사건이다.

국회의원부터 지자체 단체장, 군수, 공공기관 임원 등 사회지도층이 나서서 경력이 없어도,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탈락했어도 무조건 합격시키는 마술을 부리는 이런 사회에서 취준생들은 자괴감을 느낀다.

최근 인터넷 포털 사이트 고민상담 코너에 올라온 한 취준생의 글은 힘없고 연줄 없는 이들을 대변하고 있다.

이 취준생은 글을 통해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공부하는데 진짜 밑빠진 독처럼 해도 해도 끝이 안나네요. 오늘은 너무 아픈데도 집에 못가고 독서실에서 끙끙 거리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인맥으로 취직되고 카톡에다가 보너스를 받았다니 그러고 자랑하는 걸 보면 전 여태까지 무슨 인생을 살았나 하고 자괴감이 드네요. 저번에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놀리는 어조로 저보고 `너가 10년동안 취직 안되면 내가 자리 하나 꽂아줄게'이러는데… 저에게도 좋은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우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어버이날 카네이션 한 송이 전하지 못해도, 하늘 같은 스승의 은혜를 알면서도 전화 한 통 걸지 못하는 취준생들의 마음을 누가 알까?

65년 만에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날도 그들은 TV 대신 책장을 넘겨야 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았어도, 낙하산으로 취직시켜줄 연줄 하나 없어도 실력만으로 당당히 입사의 꿈을 꾸는 취준생에게 좌절보다는 희망을 품는 5월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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