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역사의 모순을 쫓아내는 출발
4·27, 역사의 모순을 쫓아내는 출발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0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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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김수영의 작품 가운데 `000만세'라는 시가 있다. 000은 사람 이름이다. 그러나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아직 `만세'를 앞에 두고 000의 이름을 적나라하게 붙일 수 없다.

하여, 국민들이 미처 촛불을 들기 전 국정농단의 조짐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을 때쯤 어느 대학 대자보에 걸린 `000만세'의 패러디 글로 대신한다.

「한국 피겨스케이팅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자유라고 최순실이란/ 무당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연아 만세'/ 한국 피겨스테이팅의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자유라고 김종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예

김수영이 4·19혁명이 있던 해, 1960년에 지은 `000만세'는 게재가 거부되다가 2008년 육필 원고가 발견되면서 세상의 빛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여지껏 우리는 활자화된 매체를 통해 000의 실명을 꺼려왔다.

5월이 시작되었다. 누구에게는 `계절의 여왕'이 또 다른 누구에게는 피붙이를 잃은 처절한 피눈물이고, 울창해지는 신록과 더불어 씻기지 않은 설움의 5월은 그러나 4월 27일로 인해 완성된 혁명의 희망으로 비상하고 있다.

50㎝에 불과한 경계선을 넘나들며 남쪽과 북녘의 두 정상(頂上)이 만난 날, 우리는 비로소 한반도와 한민족의 하나 된 봄을 확인했으며, 진작부터 짐작해왔던 사람을 확인하는 정상(正常)의 세계를 깨닫게 되었다.

원래 뜨거울 수밖에 없는 5월을 후끈 달구어 놓은 2018년 4월 27일과 판문점 비무장지대 공동경비구역은 이제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평화와 번영'의 성지가 되지 위해 충만한 봄기운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토록 엄청난 일을 살아있는 동안 만끽하게 된 우리는 결코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열어 놓은 만큼, 되돌아보고 또 제거해야만 하는 치우침의 끈질긴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분단이거나 동족상잔의 비극이 여전히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와 위협으로 몰아가는 단 하나의 이유가 아니듯, 체제의 대립과 차이 역시 4월 27일 확인한 대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근본을 온통 흔들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한반도의 근·현대를 살아온 우리는 그동안 왕권조차 어쩌지 못하는 철저한 노론 중심의 일당 지배 권력의 역사적 흔적을 제대로 파악하는 노력에 게을렀다. 그리하여 나라를 고스란히 일본에 갖다 바친 당시 관료의 절반 이상이 노론의 당파에 해당한다는 역사적 사실과 두터운 식민 추종세력의 정체를 캐내려는 정성 또한 여전히 부족하기 그지없다.

그리하여 어렵사리 식민시대에서 벗어나면서 모처럼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고 역사적 오욕을 청산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이 역시 수구세력에 의해 겨우 1년여 만에 무산되는 애석함에 여전히 공분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런 사이 제국주의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저지르고 있을 때 반미결사항전을 독려하던 지배세력들은 태연하게 한미동맹의 철저한 신봉자가 되고 있는 모순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늘 전쟁의 위협을 부풀리며,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제 나라를 향해 총을 쏴달라는 북풍 공작을 마다하지 않고, `반공'이라는 미명 아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거나 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주저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외면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 않았는가.

4월27일은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모든 모순과 왜곡된 역사를 이 땅에서 영원히 쫓아내는 시작의 날.

핵무기가 사라지고 완벽하게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며 평화와 번영의 세계 중심이 되기까지 같이 놀고 어우러지는 시작과 더불어 5월이 뜨겁다.

추신:`000만세'는 언론 자유와 이념 강박증에 대한 강한 풍자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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