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억법
봄의 기억법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8.04.2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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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

봄은 알고 있지 않을까. 어느 때에 꽃을 피워야 하는지, 언제 잎을 틔워야 하는지를. 어느 게 잎이 먼저고, 꽃을 먼저 피울 나무인지를 서로 헷갈리지 않는 걸 보면 이미 다 알고 있다. 꽃 등을 환희 밝히고 나서야 푸른 잎을 다는 나무는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전령사다. 무거운 겨울을 밀어내고 마음에 봄을 들여놓게 한다.

온몸으로 추위를 묵묵히 견디고 꽃을 피워낸 나무가 긴 묵언 수행을 하고 돌아온 것처럼 처연해 보인다. 싸움터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돌아온 용감한 무사 같기도 하다.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도 난방을 틀어대는 사람들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꽃나무 앞에서 숙연해지는 봄이다.

꽃샘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는 꽃잎을 연다. 가끔 고약한 눈에 까무러치기도 하지만 끝까지 가지의 손을 놓을 수가 없다. 꽃이 꽃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서다. 막바지의 안간힘을 쓰고서야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이토록 눈부신 꽃을 피울 수 있는 이유는 차가운 영하 날씨를 이겨냈기 때문이다. 꼭 이 과정을 거쳐야만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개나리가 너무 예뻐 외국인이 따뜻한 제나라에 가지고 가서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꽃은 피우지 않고 잎만 무성하더라고 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건 겨울을 견디는 시간이 없어서이다. 이를 춘화현상(春花現象)이라고 한다. 자연과학의 용어로 차가운 영하 기온을 반드시 거쳐야만 꽃을 피우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춘화현상은 어디 자연뿐이랴. 사람들에게도 누구에게나 이런 시기가 있다. 인생에서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다. 선택의 기로에 놓여 고심하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지칠 때도 있다. 맞게 가고 있는지 막막할 순간이 오기도 한다. 때로는 솟구친 돌부리에 넘어져 피를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때마다 인내는 자신을 시험하려 들것이다.

아들에게도 이 과정이 있었다. 대학에 떨어져 재수했던 일 년이란 시간이다. 시골에서 서울로 가 학원에 다니는 결정을 했다. 좁은 고시원에서 자신과 싸웠을 터이다. 혼자서 나약해질 때마다 얼마나 추스르고 채찍질했을지 짐작이 간다. 처음으로 닥친 겨울을 잘 이겨내 주었다. 스무 살에 겪은 추위는 아마도 얼음물에 발을 담근 것 같은 체감온도였으리라.

위기가 왔을 때 힘듦을 남에게 돌리면 훨씬 힘들어진다. 남 탓, 환경 탓의 어리석은 분노는 희망이 없다. 스스로를 괴롭혀 좌절하게 만든다. 나에게 닥친 모든 일은 남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외부에서 온 게 아니라 내 안에서 나와 부딪혀 발생한 충돌이다. 행복과 불행이 나로 인해 결정되는 것이다.

나에게도 유난히 춥고 혹독한 지난겨울이었다.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된 오해는 심한 부부통(夫婦痛)을 앓게 했다. 내 탓이었기에 아프다고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속으로 감내하면서 봄을 기다려왔다. 세상에 꽃을 피워대니 나에게도 봄이 찾아왔다.

그랬다. 나무는 저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하여 긴 겨울을 수도승인 양 참고 기다렸다. 찬란한 봄을 위해서라면 춘화현상(春花現象)을 당연한 듯이 피하지 않았다. 혹한도 마다치 않고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겨울을 필연처럼 견디어야만 오는 계절. 나무는 봄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무가 기억하는 봄, 그 기억법을 나는 가슴에 문신처럼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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