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0점 조정
마음의 0점 조정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8.04.2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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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방석영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大學) 정심장에는 “心不在焉(심부재언) 視而不見(시이불견) 聽而不聞(청이불문) 食而不知其味(식이부지기미)”라는 구절이 나온다.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잘 모른다는 말이다.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은 다 내 마음의 투영(投影)이고 투사(投射)'라는 가르침도 있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한다'는 속담 또한 이 세상이 마음의 투영이고 투사란 사실을 잘 보여준다. 처갓집 말뚝이 절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내 마음이 그렇게 만든 것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처갓집 말뚝에 절을 하다가도, 마누라가 싫어지면 장인 장모를 못 본 척 외면할 수도 있다. 처갓집 말뚝에 절을 할 때와는 정반대다. 아내나 장인 장모가 미워져서 못되게 굴 때는, 아내 및 장인 장모의 문제점 및 잘못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 같은 행동을 하게 됐다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경우마저 있다. 불교의 대표적 경전인 화엄경은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everything depends on the mind)'즉, `세상사 모든 일은 오직 마음의 지은바'라고 역설하고 있다. `내 마음이 곧 목전의 세상이고, 목전의 세상이 곧 내 마음의 발현인 까닭에 마음과 세상이 둘 아니라는 것'을 설파하는 가르침이다.

일체유심조'와 관련해 간과해선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견해에 눌러앉은 채, `배가 고파도 배부르다고 마음만 먹으면 배가 부르다.'라는 착각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일체유심조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배가 고픔에도 배가 부르다는 망상을 통해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짓은 결코 하지 않게 된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고 졸음이 밀려오는데도 배가 고프지도 않고 졸리지도 않다는 생각을 일으켜서, 배고픔과 졸음을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밥이 없다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면 된다. 이도 저도 없다면 음식을 구하러 밖으로 나가든지, 그럴 힘조차 없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배가 고프니, 배가 고프지 않으니 하는 등의 불필요한 생각을 하지 않음으로써 괜한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저울이 정확하게 무게를 재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선, 그 어떤 저울도 0점 조정이 전제돼야만 한다. 우리의 마음도 저울과 다르지 않다. 마누라가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의 연장선에서 처갓집 말뚝을 보듯 세상을 봐선 안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누라를 미워하는 마음의 연장 선상에서 장인 장모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제대로 0점 조정이 된 저울처럼,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거나 치우침 없는 마음으로, 매 순간 온전하게 깨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기억의 저장 창고인 업식(業識)의 생각 놀음에 휘감기며, 팔이 안으로 굽거나 색안경을 끼는 일 없이,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직시(直視)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을 0점 조정하기 위해선, 매 순간 들뜨고 흐트러지고 탁해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모으고 맑혀야 한다. 그래야만 그 어떤 선입견에도 물들지 않은 갓난아기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행복한 삶-올곧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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