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라는 이름으로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 박윤희<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 승인 2018.04.2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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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박윤희

한 달에 한 번은 여든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병원에 간다. 8년 전부터 심근경색으로 인한 부정맥을 비롯한 합병증 때문에 신경과와 심장내과를 주기적으로 다녔는데 이번엔 치과 치료까지 겹쳐서 진료과목이 더 늘었다. 두세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은 와야 한다. 처음에 병원에 다닐 때는 바빠도 내 부모인데 당연히 와야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잦아진 병원 방문으로 지치고 힘들어졌다.

“너 바쁜데 나 때문에 고생시켜서 어쩌니?”

오늘따라 친정엄마는 내 눈치를 보시는 것 같았다. 바쁘다는 말은 안 했지만 나의 행동이 평소와 달랐다. 아니라고 말했지만 바쁜 날은 급한 마음에 액셀을 더 밟고 서두르게 된다. 친정엄마는 예민했던 나의 마음을 다 읽으신 모양이다. 병원에 들어서니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000 씨, 보호자 계세요?”

“……”

“안 계세요?”

병원에 도착해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뒤늦게 `네'라는 대답과 함께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내가 보호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어색하고 낯설었다. 간호사는 진료에 대한 기본 사항을 확인하고 기다리란다. 진료를 기다리는 많은 환자들 틈에 앉아 있는 친정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보다 왜소해지고 좁아진 어깨를 보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학창시절에는 `보호자'란에 부모님의 이름을 쓸 때가 많았다. 그땐 그것이 그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결혼 후에는 `보호자'란에 남편의 이름이 쓰여 있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 이제부터 나의 보호자는 남편이란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나니 나는 아이의 보호자였다. 아이의 보호자로서 책임과 뿌듯함이 공존하게 되었다. 애들 낳고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인지 부모보다는 자식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 나의 자식도 다 커서 각자의 일이나 생활에 바쁘다.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생각도 많아지고 사소한 일에도 서운해진다. 나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정정하시던 친정엄마가 걷는 게 어둔해져 자주 넘어져 아픈 것을 보면서 잘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할 때가 많았다. 부모에게 잘하고 싶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실천은 쉽지 않다.

부모로부터 늘 받기만 했던 것이 당연하게 느꼈던 내가 부모에게는 기대고 싶은 상대이자 희망이었는지 모른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나도 과연 내 자식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가 묻는다면 쉽게 대답 못할 것 같다. 자식들의 모든 걸 감당해 주신 부모의 감사함을 당연한 것처럼 여긴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도 언젠가 나의 자식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날이 찾아오리라는 생각을 하면 걱정이 앞선다.

여든이 된 나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내 어머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스스로 의지대로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3시간 동안의 기다림 속에 많은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쳐 곤히 잠든 친정엄마의 모습을 보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과연 나는 보호자라는 이름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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