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니세포르 니에프스
조셉 니세포르 니에프스
  • 정인영<사진가>
  • 승인 2018.04.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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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정인영

1826년 프랑스 조셉 니세포르는 그의 집 정원에 있는 건물을 담은 세게 최초의 사진이미지를 만들어 냈는데 그 제목이 `관점'이었다.

빛을 받으면 굳어지는 아스팔트의 일종인 주데아 비투멘을 바른 백랍판에서 그 모습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노출되지 않은 비투멘은 곧바로 녹아서 변하지 않는 이미지가 되었다. 세계 사진역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사진이라고 보여지는 니에프스의 쾌거는 지금까지도 최초의 변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프랑스 중부지방에 살고 있던 니에프스는 유복한 집안 출신이다. 그는 당시 석판인쇄술의 새로운 공정에 관심을 갖고 그림을 복사하는 방법을 고안해내기 위해 카메라 옵스쿠라에 자연으로부터의 직접복사를 시도했다.

니에프스가 1825년 세계 최초로 빛을 이용해 17세기 네덜란드 판화작품을 찍은 사진이미지 `말을 끌고 가는 소년의 모습'이 2002년 초 프랑스 소더비경매장에서 44만3000달러(약 6억원)에 팔리는 등 사진발명 공헌자로 명성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니에프스의 공적과는 관계없이 세계 공식 사진발명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1839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사진 탄생을 알리는 뉴스가 발표되었다. 오페라 무대 미술가 루이스 자크망데 다게르가 발명한 다게레오타입의 사진술이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종신회원 프랑수아 아고라에 의해 전 세계에 공표된 것이다. 니에프스의 연구가 한창인 것을 우연히 알게 된 다게르는 니에프스에게 정보를 교환하자는 편지를 보냈고 1829년 연구파트너가 되었다.

니에프스는 자신의 동생은 물론 아들까지 셋이서 연구 중이었는데 다게르까지 합세해 서로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다게르는 당시 알프스산맥과 같은 장관(壯觀)을, 특수조명과 대형의 투명한 그림을 통해 환상적인 효과로 재현하는 디오라마를 개발해냈다.

사진과 같은 발명품의 성숙기였던 19세기 중반에 서양의 부르주아들이 사진을 갖기를 열망한 것과 맞아떨어졌다. 다게르는 부자들이 자기들 같은 특별한 사람들만 가질 수 있었던 가족사진을 원하는 것에 흥미를 갖고 그 장사로 큰돈을 벌었다.

다게르는 자신의 사진술에 만족하지 못하다가 니에프스만의 연구를 알게 되었고 그 기술을 접목해 뛰어난 다게레오타입으로 완성시켰다. 니에프스에게는 비밀로 한 채 자신의 독자적인 발명으로 명성을 얻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것은 니에프스의 아들이었다. 니에프스는 사진 탄생 공표 6년 전인 1833년에 죽었고 다게르는 모든 사실을 왜곡하고 자기 혼자만의 유일한 업적으로 만들어 프랑스 정부로부터 막대한 상금과 사진발명 특허권을 차지하였다. 니에프스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던 것은 물론 명예도 얻지 못했다.

니에프스의 아들은 다게르에게 모든 증거를 들이대며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단호한 거절뿐이었다. 분을 견디지 못한 니에프스의 아들이 프랑스 정부에 사실을 알리고 규명에 나섰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 니에프스를 국립묘지에 묻히게 해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그마저도 허사가 되었다.

한편 다게르는 돈에 파묻혀 주색잡기에 빠졌고 급기야 매독에 걸려 고생하다가 죽고 만다. 세월이 흐른 지금 사진발명은 다게르가 했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단연코 니에프스라는 사실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지금 프랑스에서 니에프스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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