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식(三食)이 연가
삼식(三食)이 연가
  • 김기원<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4.2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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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세상인심 참 고약합니다. 자고로 가정 있는 자가 집에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하는 건 당연지사인데 언제부터인가 그 당연한 일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습니다. 밥이 생명인데, 밥이 사랑인데 그 신성한 식사를 놓고 일식이니 삼식이니 하며 남편들을 희화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남편이 집에서 하루에 몇 번 식사하느냐를 놓고 벌이는 여자들의 입방아와 개그에 남자들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아니 참 거시기 합니다. 집에서 하루에 한 끼도 안 먹으면 `님'이 되고, 한 끼 먹으면 `씨'로, 두 끼 먹으면 `군'으로, 세 끼 먹으면 `놈'이 되고 `새끼'가 되는 이른바 `영식(零食)님', `일식(一食)씨', `이식(二食)군', `삼식(三食)놈', `삼식새끼'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처럼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고 오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결혼 초에는 직장에서 회식하고 늦게 귀가하면, 어쩌다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하고 들어가면 애정이 식었느니 어떠니 하며 닦달하던 남편바라기들이 이렇게 무섭게 변했습니다. 압니다. 하루에 세 번 상 차리고 설거지하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더군다나 볼일 보러 마실 나갔다가도, 모처럼 친구들 만나 수다 떨다가도 식사 시간이 되면 허겁지겁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남편 상 차려주어야 하는 당신들의 불편과 헌신을. 날마다 삼시 세 끼를 챙겨야 하는 건 속박이자 구속임이 분명하니까요. 오죽하면 주부들이 이구동성으로 해외여행을 가면 그곳 문물과 풍광을 보는 즐거움보다 밥하고 설거지하지 않아서 더 좋다 하겠어요. 충분히 공감해요.

아무튼 지금 인구에 회자되는 몇 식이 타령은 우리 사회 변화상을 웅변합니다. 그만큼 여성들의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남성들의 사회적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반증이니까요. 바야흐로 삼식이 수난시대입니다. 하여 은퇴 후 딱히 할 일이 없고 바깥출입 할 일도 많지 않아 집에서 삼시 세 끼를 얻어먹어야 하는 남편들의 심사가 좋을 리 없죠.

30년 넘게 알량한 자존심마저 저당 잡히고 등이 휠 정도로 일해 자식 교육시키고 집안 건사해 오늘에 이르렀건만 그동안 수고했으니 이젠 집에서 편히 쉬시라는 공치사를 듣기는커녕 되레 눈칫밥을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집구석에 틀어박혀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한 날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얻어먹기란 참으로 거시기하지요.

너네 신랑은 삼식이네 우리 신랑은 일식인데 라는 비아냥거림이 귓전을 때릴 테니까요. 그래서 요즘 요리학원이 백발이 성성한 남성 은퇴자들의 수강러시로 성업 중이라네요.

삼식이 소리를 들으며 눈칫밥 얻어먹느니 보란 듯이 직접 요리를 해서 먹기도 하고, 손주들이 오거나 친지들이 오면 맛있는 요리를 해줄 요량이겠죠.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렇지 남자들도 하려고 덤비면 밥과 찌개 정도는 얼마든지 해먹을 수 있지요. 총각 때 자취해본 경험도 있거니와 유명 요리사들이 대부분 남자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웅변하잖아요.

50년 전만 해도 할머니들이 고추 떨어진다며 남자들을 부엌에 얼씬도 못하게 했는데 생활패턴이 달라졌고 시대가 달라졌으니 남자들도 부엌일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차림과 설거지는 물론 집안청소와 세탁과 육아까지 그래야 좋은 남편 멋진 남자라는 소리를 듣는 양성평등 시대입니다.

그러니 그런 그들에게 몇 식이냐는 무의미하죠. 먼저 퇴근한 쪽이 밥해놓고 기다리는, 가사노동에 남녀의 역할분담이 딱히 필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삼식이 들이여, 아내에게 껌딱지처럼 붙어사는 남편들이여! 분연히 일어나 독립하시라. 한동안 먹고살기 급급해 미루어 두었던 취미생활도 하고 가끔씩 삼식이라고 눈총 주는 어부인을 대동하고 전국의 유명 맛집과 명소를 주유하며 폼 나게 사시기를. 수고한 당신이기에, 그럴 자격이 충분한 삼식님이기에.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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