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지의 위장술
얼레지의 위장술
  • 우래제<전 중등교사>
  • 승인 2018.04.2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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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 우래제

다시 주말이다. 고사리 종근이 마르기 전에 심어야 하고 마늘밭도 정리해야지만 왠지 주말엔 산에 가고 싶다. 흐리고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이지만 그래도 꽃이 있어 가고 싶다. 고사리 종근이 덜 마르도록 물 한 그릇 퍼붓고 산에 가기로.

이럴 땐 일기예보도 틀리지 않을까? 흐린 날씨지만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니 얼레지가 보인다. 급한 마음에 셔터를 눌러댄다. 그런데 화면이 시커멓다. 고장인가? 사진의 ABC도 잊었구나. 날씨가 흐리니 노출, 감도, 타임을 조절해야 될게 아닌가? 석삼년을 살아도 시어머니 성을 모른다더니 몇 년을 같이 다닌 사진기 사용법도 잊어버리다니 참 민망하다. 민망함은 잠시 접어두고 얼레지 잎을 보니 얼룩덜룩한 무늬가 참 다양하다. 얼룩무늬가 진한 것, 얼룩이 줄어들고 녹색이 많아진 것 등, 우리 군인들의 군복 무늬처럼 보이기도 한다. 잎이 얼룩덜룩해서 얼레지라고 했다는데 왜 이렇게 무늬가 다양할까?

보통 위장술은 동물이나 곤충이 살아남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이다. 주변과 비슷한 보호색을 띠기도 하고, 주변 환경과 비슷한 모양으로 변하기도 하고, 자신을 위협하는 포식자를 쫓을 만한 다른 무서운 동물을 닮기도 한다. 또 갑자기 이상한 색채를 내어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식물들도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나 얼레지처럼 주변 환경과 비슷한 무늬를 만들어 자신을 위장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얼레지는 남들보다 일찍 낙엽 속에서 잎이 나오는데 이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일 수 있다. 먹이가 부족한 시기에 초식동물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진한 얼룩덜룩한 무늬로 낙엽 속에서 자신을 감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의 녹색식물이 나타나고 얼레지가 꽃이 필 무렵엔 무늬가 완전히 사라지고 녹색만 띄게 된다. 사람이 보기엔 참으로 기막힌 생존전략이고 얼레지의 입장에서 보면 필사의 생존전략이다. 그럼에도 그예 찾아내 나물로 해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얼레지와 반대로 금괭이눈의 경우 꽃은 물론 꽃 주변까지 노랗게 물들인다. 수국의 꽃은 너무 작다. 그래서 꽃 주변에 가꽃(헛꽃)을 만든다. 이처럼 금괭이눈이나 수국은 꽃을 크게 보이게 하여 곤충의 눈에 잘 띄게 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위장술이다. 거울난초는 꽃의 일부(순판)가 스콜리드말벌의 암놈을 닮았다고 한다. 그리고 말벌암놈의 페르몬을 분비하는데 이것도 수놈 말벌을 유인하여 자신의 꽃가루받이를 이루기 위한 일종의 위장술이다. 이처럼 꽃들의 기막힌 생존전략이 사람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기만 하는 것은 인간의 눈으로 만 보기 때문일 것이다.

얼레지 군락을 조금 지나 꽃잎을 꼭 닫은 꿩의바람꽃 만나고 조금 지나 노루귀를 만났다. 분홍 청색 꽃받침을 가진 앙증맞은 꽃이다.

제각기 봄맞이에 바쁘다. 흐린 날씨에 차가운 김밥을 먹으니 뱃속이 얼어붙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뜨거운 라면 국물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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