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대신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감동 대신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24 17: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요단상
▲ 정규호

경찰이 달라졌다. 다음 두 장면은 내가 직접 목격한 사실이다.

#1. 몇 년 전의 일이다.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 아침. 당시 경찰출입기자였던 나는 기자실로 출근 중이었고, 청주시 우암동의 한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이었다. 내 차 옆에는 경찰 순찰차가 서 있었는데, 바로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대형 덤프트럭이 신호를 위반하면서 갑자기 출발했다. 나는 당연히 경찰 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뒤를 쫓아 단속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자로서의 공명심에 따져 묻자, `별 이상한 놈 다 봤네.'라는 표정으로 무시한다.

#2. 며칠 전의 일이다. 늦은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는 중 청주시 금천동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몸놀림이 불편한 노인이 느릿느릿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예상대로 채 절반도 건너지 못하고 신호가 바뀌고 말았다. 순간 내 옆의 경찰 순찰차가 확성기를 통해 낮은 목소리로 “차 출발하지 마세요.”라고 안내방송을 한다. 그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나의 다른 옆 차선의 승용차를 막아선다. 경찰 순찰차 옆에는 <상당 교통>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직접 겪은 이 두 가지 장면은 경찰이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첫 번째 장면은 경찰의 의무를 외면한 것. 눈앞에 경찰이 있는데도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것은 국가가 정한 법질서를 무시해도 된다는 풍토를 국민 일반에게 번지게 할 위험이 있다.

두 번째,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횡단보도 신호가 바뀐, 사실상의 법 위반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끝까지 보호한 것은 그만큼 국민에 대한 인권을 지키려는 경찰 본연의 자세가 깊어지고 성숙해졌음을 의미한다.

경찰이 이렇게 변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나는 그중 문재인정부에서 시도되는 사법권 독립이라는 경찰의 오랜 숙원 해결 가능성이 결정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시차를 두고 내 눈앞에서 벌어진 경찰의 친절과 국민안전 및 인권, 그리고 범법을 애써 외면하는 경찰의 차이는 너무 크다.

문제는 촛불혁명에 따라 이토록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 숨어있는 적폐가 너무도 악랄하게 활개치고 있다는 것이다.

촛불로 되살린 국민 주권은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주권으로 승화되어 표현되지 않고,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총론은 알고 있으나 각론에 이르지 못해 실천과 실현이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정책이나 정치철학, 지역에 대한 투철한 봉사와 희생의 소신 대신 오로지 `문재인 팔이'에 골몰하는 것은 물들어 올 때 배 띄운다거나, 볕 좋을 때 묵은 빨래 내다 넌다는 식의 기회주의 속성에 불과하다. 반드시 시민이 철저하게 검증하고 걸러내야 할 일이다.

만연된 진영논리 역시 경계하고 삼가야 할 일이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수없이 낙마한 사례를 보면 도대체 이 나라에 인재가 그렇게도 없는가 한탄스럽다. 물론 억울한 면도 있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보수 야당과 언론을 탓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촛불로, 우리가 만든 정부에서 `도덕성의 평균'을 잣대로 내세우는 건 마땅치 않다. 그보다는 더 높은 도덕성과 지도자로서의 평균 이상을 스스로 갖춰야 하고, 그런 인물을 진영을 초월해 찾아내야 한다.

미욱한 탓인지 나는 여태 미세먼지와 쓰레기 대란의 두려움을 덜어 줄 환경부장관의 목소리를, 그리고 대학입시제도를 둘러싼 교육부 장관의 소신을 듣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어떻게든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책임 전가만을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쏟아지는 미투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장관은 보이지 않고 있고 최저임금을 대하는 보이지 않는 가진 자들의 저항에 명쾌하게 대처하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집권 1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유가족을 끌어안는 식의 감동은 먹히지 않을 것이다. 달라진 경찰처럼 시스템의 변화가 절실하다.

문재인이라는 알맹이에 더러운 껍데기가 너무 많이 붙어있는 꼴은 아닌지, 실로 엄청난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걱정이 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