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미스 함무라비
  • 하은아<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8.04.23 2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하은아

살면서 경찰서를 갈 일이 얼마나 있을까? 면허증을 갱신하러 가거나 국제면허증을 발급받으러 가는 정도 이외에는 갈 일이 없다. 경찰서가 그런데 법원이나 검찰청은 더더욱 갈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이미지가 그대로 연상된다. 무섭고 위압적이다. 그러면서도 한없이 공명정대하기를 바란다. 나처럼 힘없는 개인이 기대할 곳은 법이며,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곳이자 그것을 실행하는 기관이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에게 더욱더 높은 사회적 도덕성을 요구한다. 언론에서 나오는 정경유착과 검찰 비리, 전관예우 같은 뉴스에는 더 화를 낸다. 내가 피해를 받은 사람처럼 화를 내고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 내면은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미스 함무라비'(문유석, 2016, 문학동네)의 저자는 현직 판사다. 출판사는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유감'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저자가 쓴 법정 활극이라고 전면에 광고한다. 책 표지로 보면 여느 로맨스 소설처럼 말랑말랑해 보인다. 여리여리한 여주인공과 정의감 넘치는 남자 주인공이 만나 사랑을 이루는 그런 내용이 펼쳐질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떠한 로맨스도 없다. 크고 작은 사건들을 세 명의 판사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하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치열하며 개인의 감정을 배제하면서 기록을 읽고 법리를 해석하는 과정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판사라는 직업이 하는 일은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아주 달랐다. 챕터와 챕터 사이에 쓰인 `판사의 일'은 직업에 대한 고충을 담고 있다. 판사는 기록을 중요시하고 기록을 가지고 판단하는 일이므로 한 사건에 대한 모든 기록을 읽는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법원으로부터 신년 선물로 파란색 골무세트를 받고 서류를 잊어버리지 말고 잘 가지고 다니라며 법원 마크가 박힌 보자기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기록 읽느라 굽어진 어깨와 돋보기 벗을 날 없는 판사들의 모습이 연상되어 안쓰럽다.

이 책은 유쾌하다. 그러면서도 뒷맛은 씁쓸하다. 모든 사건이 흑백논리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선의 판단을 하기 위해 판사들의 고민하는 모습에 안도감을 느끼고 판사들이 잘못한 사람들에게 호통치는 모습은 꽤 유쾌하다.

저자는 판사의 일을 백조와 같다고 말한다. 법복을 입고 근엄하게 앉아 사건을 심판하는 일만을 사람들이 알지만 그 판결을 하기 위해 수 만장에 이르는 기록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고 말이다. 마치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기 위해 발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백조처럼 말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법원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소소하게 보여주었다.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우리 주위에 있을법한 에피소드를 다룬 픽션이다. 그럼에도 소설 속에 나오는 판사들의 이야기는 실제와 같을 것이다. 그들이 있어 나는 오늘도 안심하고 일상의 행복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다. 세상 유명한 사건에 대한 판결을 가지고 그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화를 냈던 것이 겸연쩍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록과 씨름하고 있을 그들의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