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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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8.04.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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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1988년 6월 3일 한겨레신문은 1면 톱기사로 `사회정화위원회 8년 만에 폐지'라는 제목의 보도를 한다.

정부와 민정당이 당정협의회를 열고 사회정화 운동을 민간 주도로 전환하기로 했다는 게 뉴스의 골자다. 대부분 신문이 이를 1면 주요 기사로 다뤘는데 한겨레는 `한겨레답게' 기사 끝에 사회정화위원회의 역기능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사회정화위원회는 지난 80년 10월 대통령령으로 설치돼 사회정화라는 이름 아래 공직사회, 교육계, 금융경제계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과외 단속, 공무원 비위 고발 등 검·경찰에 속한 사정 기능을 담당하면서 권한 남용이라는 여론의 비난을 받아왔다'

이 기사가 보도된 후 사회정화위원회는 10개월 후인 이듬해 4월 폐지됐다. 당정협의회에서 결정 난 사안임에도 불구 폐지에 이르기까지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아 꽤 저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정화위원회는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1980년 11월 1일 출범했다. 대통령령 10054호 사회정화위원회설치령이 그 근거다. 법령에 따르면 위원회의 직무는 네 가지다.

첫째가 사회정화업무에 관한 연구 및 기획, 둘째는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명에 의한 사회정화 업무에 관한 관계 행정기관·단체 및 그 산하 단체에 대한 조정과 통제, 셋째가 사회정화운동 추진 교육 및 홍보, 넷째 기타 사회 정화에 관한 수명(受命) 사항 등이다.

여기에서 두 번 째 조항을 보면 이 조직이 얼마나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의 명에 의한 업무에 대한 관계 행정기관 등에 대한 조정과 통제.'

대통령 명을 직접 이행하는 조직이니 검찰이니 경찰 따위가 무서울 리가 없었다.

차관급인 사회정화위원장이 당시 장관들을 집무실로 불러 호통을 칠 수 있었던 이유다. 초대 사회정화위원장이 훗날 민자당 대표, 국회 부의장을 지냈던 충북 출신 이춘구(1934~2011)였다는 것만 봐도 어림짐작이 간다.

조직도 꽤 방대했다. 출범 초기 사회정화위원회의 전체 정원 수는 93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각 시·도, 시군구 조직이 구성되면서 위력은 하늘을 찔렀다.

관의 추천을 받은 민간인들이 사회정화위원으로 `완장'을 차게 됐는데 위세가 대단했다. 하긴 출범 직전 그 유명한 `삼청교육대' 입소자 차출 업무가 바로 사회정화위의 전신이었으니.

구본영 천안시장이 사회정화위원회 재직 경력을 고의로 숨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확인 결과 그가 선관위에 제출한 이력서에 포함됐던 8년간의 사회정화위원회 경력이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는 빠져 있었다.

선거정보도서관(http://elecinfo.nec.go.kr)에서 확인해 보니 구 시장은 2006년, 2010년, 2014년 세 번이나 천안시장 선거에 나서면서 선거공보와 벽보 등 각종 홍보물에 단 한 번도 사회정화위원회 경력을 알리지 않았다. 허위사실 공표 여부를 떠나 어느 누구에게도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어야 할 떳떳하지 못한 이력. 우리 시대의 아픈 `흑역사'를 떠올리게 돼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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