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인터넷 강국 우리의 민낯
조작, 인터넷 강국 우리의 민낯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8.04.23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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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연지민 부국장

지난해 말 극장가에는 한국영화 `조작된 도시'가 상영돼 사회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평범한 백수로 게임만 하던 주인공이 갑자기 살인자가 되고, 모든 증거는 조작된다. 평생 교도소에서 보내야 할 주인공은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보이지 않는 배후와 사투를 벌인다.

누군가 미리 짜놓은 조직된 판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당하게 되는 억울한 사건을 옮겨 놓은 영화는 기득권과 언론에 휘둘린 채 생각을 조작 당하는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현실은 가상의 공간 속에서 인권은 철저히 유린당한다. 그리고 진실의 실체에 접근할 즈음, 베일에 싸인 누군가는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또 다른 조작을 위해 유유히 떠난다. 돈과 권력으로 도시를, 시간을, 인간의 삶을 조작해 이익을 챙기고 부품화하는 영화는 섬뜩함마저 안겨주었다.

문제는 영화에서처럼 조작된 일상이 우리도 모르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회자하고 있는 드루킹사건이나 삼성증권 주식 배당사고, 음원 조작설 등은 가상공간에서 벌어졌다는 것과 조작이 가능하다는 공통점을 들 수 있다.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여론도 돈도 인기도 언제든지 조작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드루킹 사건은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으로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인터넷에서 드루킹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던 김모씨는 보수 세력처럼 보이기 위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는 댓글을 달아 인터넷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더구나 그는 2009년에도 박사모 측근에게 접근해 박근혜 대통령과 연을 닿으려다 거절당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익 앞에선 정당이나 이념도 괘념치 않고 여론을 조작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삼성증권 주식 배당사고는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정식으로 발행되지 않은 유령 주식이 숫자로 입력만 하면 입고되고, 실거래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조작 가능성도 제기됐다. 주식이 새로 발행되려면 이사회·주총을 걸쳐 예탁 결제원에 등록함에도 이런 절차 없이 발행되고 유통됐다는 점이다.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가상계좌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으니 내 통장의 돈은 무사할지도 의문이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계에서 음원 조작설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인터넷에서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른다든가, 신곡을 내놓은 가수들의 곡이 음원 차트에 오르는 것도 조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유명 엔터테인먼트사에 인터넷 브로커들이 찾아와 음원차트를 보장해준다며 돈을 요구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최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 가수의 노래가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며 또다시 불거진 음원 조작설을 보며 조작도 일상화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온라인으로 대부분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이 세 사건은 시사하는 바의 크다.  기술의 발달로 인간보다 기계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조작 가능한 사회로 발을 들여놓았음을 경고하고 있다. 영화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현실이 펼쳐지면서 개개인의 일상과 재산권이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마저 든다. “데이터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움켜쥐면서 소시민들의 자유는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문학자의 진단은 이제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인터넷 강국으로 진화해온 한국이 조작 가능한 사회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강력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상의 공간에 깊이 침투해 있는 조작의 씨앗이 우리를 저해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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