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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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금철<수필가>
  • 승인 2018.04.1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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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신금철

“할머니, 꽃이 아파요. 병원에 가야 해요.”

유치원에 다니는 여섯 살 손녀가 마당에 떨어져 널브러진 누런 목련꽃을 가리키며 하던 말이다. 나는 그 표현이 너무도 신기하고 기특하여 손녀의 볼을 만져주며

“그렇구나. 꽃이 떨어질 때 얼마나 아팠을까? 예솔이도 아프면 병원에 가는 데 꽃은 병원에 갈 수가 없구나.”

목련꽃을 볼 때마다 손녀의 말이 시詩가 되어 귓전을 맴돌았다. 학처럼 고고한 목련꽃을 좋아하면서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이내 떨어짐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다.

나는 목련꽃이 떨어질 때 아플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제 일곱 살 아이는 꽃의 생명도 귀히 여겨 가엾어하는 착한 마음에 `아이는 어른들의 거울이라'는 말을 되새겼다. 손녀는 꽃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곤충에 대한 사랑도 지극하여 꿈틀거리는 지렁이도 지나가는 사람의 발에 밟힐까 가던 길을 돌아서서 풀숲으로 옮겨준다.

우리가 혐오하는 곤충이나 모든 동식물도 자연의 구성원으로 존재 가치를 부여받고 태어났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삶의 가치를 존중하고 행복 할 평등의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자의로 또는 타의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불행한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에도 가족이나 형제·자매들에게 외면당하여 그를 거두어 줄 사람이 없다니 너무도 가여운 일이다.

얼마 전 모녀가 목숨을 끊고 사체死體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시청했다. 사체의 부패 정도로 볼 때 이미 수개월 전에 사망한 걸로 보이며 생활고나 사기, 피소 등의 이유 때문에 자살한 것 같다는 사건이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숨진 이들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절차를 밟아줄 마땅한 유족이 나타나지 않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 이처럼 죽어서도 형제·자매나 친인척의 무관심과 갈등으로 마지막 가는 길도 외롭게 떠나는 고독사가 많아져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무연고자 사망 시는 시. 군. 구. 기초자치 단체가 사망자의 신원을 공고한 뒤 가족이 안 나타날 경우 장례업체에 위탁해 화장 혹은 매장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한 세상 살다가 마지막 가는 길에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과 친지들의 배웅을 받고 세상을 떠나는 일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부귀영화를 누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가족,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이웃과 친구들과도 더욱 돈독하게 정을 쌓으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도 한다.

떨어진 목련꽃의 아픔을 함께하는 어린 손녀에게 꽃의 떨어짐이 죽음이라는 말을 설명하기엔 너무도 어려웠다. 대신에 떨어진 꽃송이를 주워들고 집으로 돌아와 손녀의 안타까운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점점 메마르고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어려워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좀 더 힘을 내어 살기를 바라며,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귀히 여겨 쉽게 목숨을 던지거나 다른 이의 귀한 생명을 빼앗는 잔인한 일이 없기를 바란다.

또한 내 이웃의 아픔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아까운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모녀에게 애도를 표하고, 비록 이승에서는 행복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생을 마감한 모녀가 천국에서 행복을 누리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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