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시간여행
  • 권재술<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4.1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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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시간여행'이라는 말은 아마도 공상과학 소설에서 가장 선호하는 단골손님일 것이다.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진행한다. 그 순서는 절대로 바뀔 수 없다. 시간을 도로에 비유하면 일방통행로다. 시간을 거꾸로 진행시킬 수는 없다.

상대론에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고 한다. 시간이 달라진다는 말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이 과잉 상상을 해서 과거로도 가고 미래로도 가는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마치 자동차가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듯이 말이다. 이렇게 상상을 하고 보니 매우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기게 되고, 마침 소재가 궁핍하던 소설가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스타워즈를 위시한 수많은 공상과학 소설에서는 시간여행이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고 있다.

공간은 모든 방향으로 여행이 가능하지만 시간은 그렇게 여행을 할 수 없다. 이것이 시간이 공간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인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내 대학 입학원서를 쓰는 바로 그때로 돌아갔다고 하자. 그래서 내가 과거에 실수로 잘못 지원했던 물리학과가 아니라 문예창작과에 입학원서를 내도록 바꾼다고 하자. 그리고 다시 지금으로 돌아온다면 지금의 나는 물리학자로 되어 있을까? 아니면 시인이 되어 있을까? 아니면 물리학자인 나와 시인인 나 둘이 존재할까? 더 극단적으로 과거로 돌아가서 아버지 어머니가 결혼하는 것을 방해해서 결혼을 못하게 해 버리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까?

이번에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간다고 해 보자. 미래에 가 보니 지금 내가 꿈꾸던 그런 성공한 내가 아니라 완전히 실패한 나를 발견한다고 하자. 그리고 내가 실패한 원인을 추적해 보니 내가 물리학과를 선택한 것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그리고 입학원서를 쓰는 날이 되었다고 하자. 그래서 나는 물리학과를 선택하지 않고 문예창작과를 선택한다면 나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 아닌가? 그러면 미래는 실패한 물리학자인 내가 있을까? 아니면 성공한 시인인 내가 있을까? 아니면 둘 다 존재할까?

시간여행, 얼마나 멋진 여행인가? 과거로 가서 잘못된 모든 것을 바로잡고, 미래로 가서 내 모든 꿈을 실현시키고. 이렇게 된다면 인생은 또 얼마나 가벼운 것이 될까? 언제나 바꾸어버릴 수 있는 인생, 가볍다 못해 아주 무의미해져 버리지나 않을까?

이 우주는 무한광대해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상상할 수 없는 것까지 일어나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이 우주가 아무것이나 가능한 그런 우주는 아니다. 이 우주는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존재다. 일어날 수 없는 것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우주다. 귀신이 장난할 수 있는 그런 우주는 아니다. 시간여행이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해도 일어날 수 없는 것은 일어날 수 없다. 상대론이 아무리 이상한 학문이라고 해도 이렇게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이길 자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흘러간 시간은 없어지고, 오지 않은 미래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없어진 과거, 생겨나지도 않은 미래를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흘러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시간은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어떤 폭탄도, 어떤 폭군도 시간을 이길 수는 없다. 시간은 모든 것의 종결자다.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실러는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같이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고정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영원히 고정되어 있는 과거, 오지도 않은 미래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가? 시간여행은 공상하기에는 매력적이지만 현실이 될 수는 없다. 과거를 바꿀 수 없고, 미래를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단 한 번인 우리의 인생은 무엇보다 진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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