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적과의 동침
  • 반영호<시인>
  • 승인 2018.04.1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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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반영호

춘 사월. 바람이 좀 있기는 하나 춥지도 덥지도 않고 생활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봄이 여성의 계절이라고는 하나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봄. 요즘 산과 들 어딜 가나 꽃들이 만발했다. 개나리, 진달래, 생강나무꽃 등등 어딜 가나 개화가 한창이다. 그런데 그 많은 꽃 중에 꼭 마타리 꽃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사실 마타리 꽃은 봄꽃이 아니라 가을꽃이다.

마타리 꽃이 머리 깊이 새겨 있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한때 마타리 꽃을 마타하리 꽃으로 착각해 박박 우기다가 말싸움에 진 적이 있었다. 내가 잘못 알았다는 걸 안 것은 한참 뒤였는데 아직도 그 친구에게 `자네 말이 맞았네. 마타하리 꽃이 아니라 마타리 꽃이었네'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 마타하리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타리와 마타하리는 이름이 비슷한 `하'자 하나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도 모르고 나는 똥고집을 부리며 저 꽃은 마타하리 꽃으로 음모와 배신의 꽃이라 우겨댔던 것이다.

여간첩의 대명사인 마타하리. 마타하리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의 사교무대 물랭루주의 댄서였다. 독일은 파리 사교계의 중심에 있었던 마타하리를 이용해서 첩보를 수집했었다. 정보를 캐내려는 목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프랑스 장교를 대상으로 잠자리도 서슴지 않아 `적과의 동침'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프랑스는 그녀가 보낸 첩보가 연합군 5만 명의 목숨과 같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프랑스 권력층은 그들의 갖가지 추문이 드러날 위기를 느낀 나머지 사형 집행을 서둘러 그들의 지저분한 냄새를 덮어버리려 했다는 후문이 있다.

마타리는 뿌리에서 된장 썩는 냄새가 나서 패장(敗醬)이라고도 하고, 이 고약한 냄새를 `맡았니'라고 하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또, 설거지한 물을 `마타리물'이라고도 하는 지방이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아랫도리에서 나는 좋지 않은 냄새에서 그 이름이 나왔지 않았나 싶다. 마타하리는 유럽을 홀린 미모의 스파이로, 희대의 여간첩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트럼프는 동맹국의 반발과 미국 내 역풍에도 국가안보를 빌미로 철강관세 부과를 강행했다. 트럼프는 수입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최종 서명했다. 미국으로 들어가는 모든 철강 제품에 관세가 붙는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상대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대상이다.

우리 철강업체의 대미 수출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이달 말로 예상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도 철강관세를 놓고 쌍방이 공세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 일본 등 미국 동맹국들도 보복관세를 시사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도 “동맹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들의 보복관세로 글로벌 무역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일제히 우려를 전했다. 글로벌 무역전쟁이 확산하면 수출부진과 경제심리 위축 등으로 우리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기도 한다. 진주만을 공격당했던 미국은 일본과 절친 우방국이 되었다. 6. 25때 북한을 도와 협공했던 중국이나 철천지원수 같은 일본은 끊을 수 없는 우리의 무역국이다. 혈맹이라는 미국의 행패는 도를 넘는다.

마타하리라고 머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마타리 꽃을 마타리라 고쳐 부르고 싶은 생각이 없는 나는 친구에게도 `내가 마타리를 마타하리라고 잘못 알았었네'라 고백하지 않을 것이다. 또다시 논쟁을 하게 된다 해도 여전히 마타하리 꽃이라 부르고 싶은 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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