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oo, 그 경계에서(4)
Me too, 그 경계에서(4)
  • 전영순<문학평론가>
  • 승인 2018.04.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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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전영순

산에 오르다 마른 나뭇가지에 발처럼 늘어진 개암나무 꽃술을 본다. 생명 있는 것들은 암수 모두 저만의 자태로 시선을 끌려고 모양과 색과 향기로 단장한다. 개암나무 또한 오늘 나의 시선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제 존재감을 세상에 알리려고 나름 치장을 하고 유혹한다. 온 산이 똑같은 모양과 색깔, 향기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심심할까? 다양한 존재들이 미추(美醜)로 조합을 이루기에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는다. 자웅동주인 개암나무를 보며 인간도 만약 자웅동체라면 어떨까? 필요에 의해 상황대처를 잘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미투니 불륜이니 하는 말이 사라질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내려왔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합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예기치 못하는 상황이 있다 하더라도 절대적인 권력이나 강압, 강요 때문에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이 좋아서 하는 행위라면 목적이 없어야 하고 반드시 책임과 의무가 따라야 한다. 책임지지 못할 사랑이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예전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아날로그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한 치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진입했다. 백세 시대를 맞아 중년이 된 나는 생활환경보다 세대 간의 정신격차, 사고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신세대들과의 정신적 갈등과 격차를 실감한다. 누구에게 간섭이나 통제받기를 싫어하는 신세대들, 생활의 편리함만을 좇아 과학문명에만 치중한 기성세대들의 사고가 신세대들의 정신적 결핍을 초래하고 있다.

예전에 남녀관계에서 외도란 말이 참 어색했는데, 요즘은 남녀관계에 불륜이란 말이 그리 낯설지 않다. 인간이 덮어두었던, 잠재된 인간의 모습이 미성숙한 단계에서 섣불리 행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세상이 변했고, 시대가 변했고, 생활방식이 변한 요즘, 인간 사고도, 생활 패턴도 변했다. 고정되어 있기는 만무하다. 백 세 시대를 맞아 이십 대에 결혼했다고 가정한다면, 한 사람과 근 80년을 같이 살아야 한다. 서로 사랑하며 애틋한 사이라면 80년도 짧고 시간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허나 이 웬수하며 살아가는 부부라면 이보다 더 큰 형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지복이 잘 먹고, 잘 살고, 잘 죽기라면 이것은 엄연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인간사고가 좋은 방향으로 진화했으면 좋으련만 개인의 이익이나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여러 분야 고위층과 지식인들이 “Me too”에 연유되는 것을 보면 “좀 잘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절대적으로 권력이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해석이 따르겠지만 정말 사랑해서 어쩔 수 없이 불륜이라는 죄를 저질렀다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지 않게 깔끔히 정리하라. 어느 한 쪽이 금이 가게 되면 깨끗하게 단념하는 매너도 사랑이다. 헤어지는 마당에 상대를 괴롭히거나 상처를 준다면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나는 타인의 약점만을 찾아 상대방을 괴롭히거나 공격하는 비굴한 인간형과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린 소녀들을 성적 노리개로 생각하는 짐승들을 제일 싫어한다. 민주주의 사회에 더불어 살아도 다 못 사는 세상, 비양심적이고 양아치처럼 저울질하며 눈치 보는 사람들도 싫다. 아직은 여성들이 약자로 존재하는 세상에 하루빨리 양성평등의 시대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인간들이여, 책임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사랑이란 위대한 이름으로 포장하지 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유혹은 경제적 부나 정치적 권력의 유혹이 아니라 인간이 추구하는 정신적, 문화적 미(美)이다. 실러는 야만과 원시에서 벗어나는 희망의 길이 미(美)이며, 미는 타락하고 퇴보한 인간성을 구제하는 창조물이며, 아름다움을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고 보편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실러가 말하는 미는 경험과 학습으로 완성된 우리 삶의 보편적 가치의 미(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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