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덕구'와 할배
영화 '덕구'와 할배
  • 김기원<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4.1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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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영화 `덕구'는 경기도 어느 시골마을에 사는 70세 할배가 그의 손주 7살 덕구와 5살 덕희와의 삶을 그린 가슴 먹먹한 영화입니다. 아니 이 시대의 화두인 다문화 가정과 조손 가정의 문제를 국가와 지역사회가 보듬고 가야 함을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영화였습니다.

지난 토요일 아침 아내의 느닷없는 제의로 `덕구'를 보게 되었는데 기대 이상이었어요. 덕구와 덕희 보다 조금 어린 손녀와 손자를 둔 60대 중반의 할배와 육순 할매가 닭똥 같은 눈물을 연실 훔치며 감동했으니까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연인과 함께 온 청춘남녀들도, 부모 손잡고 온 아이들도 모두 그렇게 훌쩍이고 있드라구요.

줄거리는 이랬습니다. 인도네시아 여자인 덕구 엄마는 남편의 사망 보험금 2천만 원을 가지고 가출했고, 그 죄로 시아버지인 덕구 할배에게 쫓김을 당합니다. 폐암에 걸려 살날이 많지 않은 홀아비 덕구 할배가 식당 불판 닦기 등 온갖 구진 일을 하며 어린 손주를 지성껏 키웁니다. 아니 도란도란 살아갑니다. 덕구와 덕희는 동네 또래 아이들에게 다문화 가족이라고, 엄마가 돈 가지고 도망쳤다고 놀림과 무시를 당합니다. 할배가 아무리 애틋하게 거두어도 엄마가 마냥 그립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자 할배는 어쩔 수 없이 동네 사람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손주를 입양시킵니다. 친지에게 여행경비를 빌려 며느리 찾으러 인도네시아로 떠난 할배는 사돈집에서 며느리가 자신의 아들과 결혼하기 전에 모국에서 낳은 병든 딸을 수술시키고자 훔친 돈 2천만 원을 송금한 사실과 며느리가 안산 어느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며느리가 쓴 편지봉투를 들고 귀국한 할배는 병이 깊어져 입원하게 되고, 할아버지를 보러 병실에 갔다가 엄마의 편지주소를 발견한 덕구는 엄마 사진과 편지봉투를 들고 엄마 찾아 안산 시내를 헤맵니다. 지인에게 덕구 소식을 전해 들은 덕구 엄마는 그동안 일해 모은 저금통장을 손에 들고 돌아와 덕구 할배에게 용서를 구하고 할배는 며느리를 반겨 껴안으며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분명 신파였으나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신파가 아닌 품격 있는 영화였습니다. 어찌나 가슴이 먹먹했던지 영화가 끝났는데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고, 객석에서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어 영화관을 빠져나오기 민망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울림이 큰 영화였어요. 유명 배우라고는 할배역을 맡은 이순재 한 명뿐이었는데도 이처럼 진한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건 영화 전편에 흐르는 따뜻한 인간애와 덕구역과 덕희역을 맡은 두 아역배우의 성인 뺨치는 뛰어난 연기와 올해 나이 84세로 연기 경력 62년의 내공을 쌓은 이순재의 중후한 명품연기가 잘 녹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노 개런티도 화재였지만 7년 만에 주연배우로 복귀하며 한 말이 멋져요.

`배우에게 가장 어려운 건 평범한 역할이다. 같은 노인 역할이라도 미묘하게 달라야 하고, 평범한 가운데 적절한 표현과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나는 모든 영광을 누린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살아보니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열심히 한 사람으로만 기억해주면 된다.' 그가 왜 대 배우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곱씹게 하거든요.

아무튼 할배는 아버지의 아빠를 일컫는 할아버지의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영화 `덕구'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방수인 감독의 말처럼 `높은 산과 같았던 사람이자 세상 제일 만만했던 사람, 나와 제일 나이 차이가 많았으면서도,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던 사람, 이제 막 떠오르는 해처럼 삶을 출발하는 나와 달리 이제 막 지는 석양처럼 삶을 마무리했던 사람, 세월이 흘러 불현듯 내 얼굴 속에서 만난 그리운 사람'이 바로 할배입니다. 할배가 된 지 수년이 흘렀건만 할배는 여전히 그리운 이름입니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우리 할배.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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