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그날 아침! 결코 잊지 말아야 할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17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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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텅 빈 집에서 혼자 아침밥을 챙겨 먹고, 쓸쓸한 출근길에 나서는 처지라도 나는 괜찮습니다. 새벽같이 출근한 아내는 늦은 시각이지만 집으로 돌아올 것이고, 학업을 위해 대처로 나간 자식들은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주섬주섬 밥상을 차리고 꾸역꾸역 밥숟가락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 일이 사무치는 외로움 때문이라는 생각조차도 과분한 사치라는 걸 문득문득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 날 아침!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고등학생이 되도록 애써 키운 자식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통한이 되어버린 그 날 아침의 처절함에 비하면 나의 외로움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로막은 바다를 건너며 수학여행을 통해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으리라는 즐거움. 알 수 없는 피안의 세계를 꿈꾸며 연결과 소통의 배에 올랐을 그 어린 청춘들과 뜻밖의 영결을 마주해야 했던 찢어지는 가슴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고 잊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4월 16일 아침에 나는 노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들으며 먹먹해지는 가슴과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어쩌지 못합니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엔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 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아무리 애절한 노랫말일지라도 선율 없이 오로지 글을 통해서만 그 간절함을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벌써 4년이 훌쩍 지나도록 여전히 가슴 속에 지우지 못하는 통한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는 상실의 아픔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 떨어지면 불쑥 문을 열고 나타날 것만 같은, 잠결에도 명랑하게 “엄마! 아빠!”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빛바랜 공책과 사진, 그리고 살아생전 손때 묻은 모든 것들에 기억의 영혼이 스며들어 시시때때로 추억하게 되는 고통을, 사치스럽게 외로움을 주억거리는 나는 여태 알지 못합니다.

살아 있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통한의 아픔을 주었던 삶의 터전을 떠나 차라리 잊으려, 잊으려 해도 미치지 못하는 단장의 애절함을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 그 날 아침의 비극을 우리가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 일은, 단지 애절한 죽음과 남은 이들의 고통에 대한 위로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직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고, 여전히 감추고 있는 것이 남아 있는, 그리하여 원인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장벽을 허물어야 하는 일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우리 역사는 집요할 정도로 많은 ‘잊을 것’이라는 강요로 얼룩져 왔습니다. 겨레를 파탄에 이르도록 한 반민족 친일 세력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게 뿌리 박혀 있는지. 제주 4.3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국민이 어떻게 죽어야 했는지. 5.18 광주 항쟁의 만행은 누구의 책임인 것인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극과 그 악랄한 원인에 대해 온통 잊어라 닦달했던 모순을 우리가 언제까지 남아 있게 할 것인지.

즐거움은 나누면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말은 일부만 맞고 대부분은 틀린 말입니다. 그것이 오로지 개인에게만 적용될 때, 여럿이 나누었던 기쁨과 간절한 위로로 덜어졌던 고통은 혼자 남은 이들에게는 고스란히 자기 몫이 될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로 기억되고, 사람이 ‘사람’으로 온전하게 대접받으며, 나라가 진정으로 당당한 ‘나라’로 기억될 수 있는 길은 혼자서 갈 수 없고 ‘우리가 함께’일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네 번째 그날 아침!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되풀이될, 천 개의 바람이 된 그들이 지켜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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