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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나+1=혼내

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이헌경<진천여중 사서교사>l승인2018.04.17l수정2018.04.1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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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헌경<진천여중 사서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연구회'연수에서 한 권의 그림책에 대해 장면마다 이야기 나누고 해석하며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림책의 주인은 글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것을 유리 슐레비츠의 `새벽'과 피터 레이놀즈의 `느끼는 대로'를 통해 깨닫고 그림책의 그림 읽기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연수를 통해 멀어졌던 그림책의 매력에 다시 빠진 즐거운 시간이었다.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구스노키 시게노리 글, 이시이 기요타카 그림, 고향옥 옮김/베틀북/2008)에 등장하는 초등학교 1학년인 `나'는 만날 혼난다. 집에서는 엄마에게,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나'의 행동은 늘 혼나는 일이 된다. 친구 관계 역시 부드럽지 못했던 `나'는 칠월칠석날에 소원 쪽지에다 `혼나지 안케 해 주새요.'라며 삐뚤삐뚤 진심을 다해 적었다. 그 쪽지를 본 선생님과 엄마는 그제야 `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림책 속의 주인공은 특정 이름이 아니라 `나'로 표현된다. 덕분에 독자뿐만 아니라 독자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 누군가로 쉽게 연결된다.

우선 그림 속 가족사진에 아빠가 없다. 이혼 가정이거나 한부모가정이라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다. 학교가 끝나면 또래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은 어린 `나'는 부모님 대신에 동생을 보살펴야만 했던 것이다.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동생을 보살피지만 엄마는 집에 돌아오면 동생을 울렸다고 혼내고 만 것이다. `나'의 마음도 모르고 말이다.

여자 친구들을 놀라게 하려고 사마귀를 가져간 것이 아니란 것도, 친구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많이 주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도 그림 속 표정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얼마나 정성껏 소원 쪽지를 적은 것인지 양면 가득 표현된 책상 위의 쪽지와 끝을 잘근잘근 깨 물은 몽당연필, 부서진 지우개를 통해 `나'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더 많이 화를 낼 게 뻔해.'

`그런데 내가 뭐라고 대꾸하면 선생님은 더 많이 화를 낼 게 뻔해.'

`골똘히 생각하다가 선생님에게 또 혼났어.'

우리 어른들은 왜 그랬을까? 조금 더 천천히 기다려주면 좋았을 것을, 조금만 더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면 좋았을 것을 어른들의 고집스런 생각과 섣부른 판단으로 아이의 말과 생각을 잘라버린 무심한 행동으로 이제 8살인 `나'를 걱정과 고민에 밤잠 못 이루게 한 것이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이 첫 문장에 잘 나타난다. `나는 만날 혼나. 집에서도 혼나고 학교에서도 혼나.'

아이야,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 나는 만날 혼나. 집에서도 혼나고 회사에서도 혼나. 그리고 나는 만날 혼내. 집에서도 혼내고 회사에서도 혼내. 혼나면 얼마나 속상한지 알면서도 어설픈 어른이 된 내가 그랬어. 그건 아마도 내가 혼나 본 기억이 많아서인 것 같아. 혼나 본 내가 혼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 혼나는 시간이 적었더라면 아마 혼내는 시간도 그만큼 적었을 텐데.

그림책 한 권을 통해 오르락내리락 그네 같은 하루의 감정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다. 짧은 그림책을 읽는 시간보다 내 감정과 기억을 보듬어 보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책이었다. 머리가 아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이야기가 담긴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 매일 혼나는 우리 어린이들도 매일 혼내는 우리 어른들도 다 같이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같이 읽고 서로의 감정을 조금 더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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