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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동거

生의 한가운데 임현택<수필가>l승인2018.04.17l수정2018.04.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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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택<수필가>

산행에서 내려오는 길목, 화투연이 지나간 음지에 때늦은 냉이가 지천이다. 자신의 몸을 땅속 깊이 감추고 오체투지처럼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차이는 냉이, 너무 흔해서 귀한 줄 몰랐다. 선조들은 가을 냉이가 많이 나면 그해 겨울눈이 많이 내리고, 냉이가 적게 나면 눈도 적게 내린다며 일기예보를 내다보며 풍년을 기원했다.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냉이,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다. 정월대보름 전에 세 번 먹으면 인삼보다 더 큰 효험을 얻을 수 있어 보약이라 하니 어찌 냉이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귀촌을 한 지인들과 냉이장아찌 담글 요량으로 도구도 없이 맨손으로 땅을 후벼 파 냉이를 캤다. 미세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냉이를 캐느라 서산 망루에 기울어지는 해를 보고서야 겨우 일어섰다. 춘풍에도 찬기가 느껴지는 그날, 밤늦도록 다듬어 냉이장아찌를 담았다. 이튿날 고뿔에 걸린 양 몸이 무겁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더니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씀바귀를 한입 오물거리는 것처럼 입 안이 쓰다. 한 끼를 굶자 요동치며 방망이질하는 뱃속, 미간이 자꾸 찌부러지면서 고뿔로 불협화음이 일고 밥상머리에 숟가락만 올렸다 내렸다 시늉만 하고서, 느슨하게 풀어진 몸을 끌고 단골 할머니 밥집을 찾았다.

할머닌 생계 때문에 시작한 된장, 청국장찌개가 옛 맛이 그대로 전해져 소담한 쉼터처럼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변변한 전답도 없고 일찍이 청상이 된 할머닌, 가난이 문턱을 넘어오는 순간 행복은 대문 문턱을 넘어갔다. 딱히 만만한 일이 없기에 작은 시골밥상 같은 식당을 개업하였다. 텃밭에 각종 채소와 오래 묵은 된장과 묵은지로 요리한 밥상, 머슴밥처럼 수북한 밥공기는 찬이 없어도 된장찌개 하나면 누구든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뚝딱 해 치우는 쉼터 같은 밥집이다.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 손은 여느 남자들의 손보다도 더 크고, 관절이 구부러져 펴지지 않는 굵은 손마디는 세월의 고단한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노구의 몸으로 양은 쟁반에 찬을 담아 들고 다녀도 소 닭 보듯 지나치는 백수, 평생을 백수로 지내는 아들이 있다. 오로지 본인의 자동차 광택을 내는데 온 힘을 쏟아 붓고 있을 뿐, 어머니와는 타인 같은 존재로 불편한 동거를 하는 이해불가인 모자지간이다.

풍성하게 잘 차려진 성찬은 아니지만 넓적한 두부, 파랗게 찰랑거리는 애호박과 냉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뚝배기만 봐도 식욕이 돋고 묵은지를 손으로 찢어 숟가락에 돌돌 말은 한입에 된장찌개 한술이면 금상첨화다. 그럼에도 난 그 아들을 보면 괜스레 입맛이 가시여 되돌아오곤 했었다. 불편한 동거로 불협화음을 내는 모자, 미세먼지 속에 가려진 흐릿한 풍경처럼 이면이 점점 궁금한 곳이기도 하다. 태생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불협화음이 서로 잘 어울리는 협화음이 되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변이다. 씀바귀보다 더 쓴 맛을 내는 괴팍한 아들이 노모가 쓰러지면서 시득부득 조락한 꽃잎처럼 말라가는 노모가 눈에 들어왔단다. 기력이 쇠하여 노모의 허리가 점점 구부정해지면서 노모와 아들은 어설픈 협화음이 냉이장아찌처럼 곰삭기 시작했다. 서툴게 쟁반을 나르고 식재료를 준비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초췌한 노모의 눈가가 촉촉하다. 어르신들은 삶을 배우는데 일생이 걸린다고 하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 비록 익숙하거나 능숙하지 못해도 변심한 아들을 바라보는 노모의 눈길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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