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문화의 꽃을 피운 곳
단양수양개유적(1)
구석기문화의 꽃을 피운 곳
단양수양개유적(1)
  • 우종윤<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18.04.1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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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 우종윤

1980년 7월 21일~23일 3일간 제천·단양지역에 내린 강수량은 275.8㎜. 엄청난 물 폭탄을 쏟아 부었다. 잔인한 여름이었다.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이다. 폭우가 그친 이틀 후에 충주댐 수몰지구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떠나 단양에 도착하였다. 남한강물이 많이 불었고 유수량도 엄청나게 늘었다. 두려웠다. 상진대교를 거쳐 거대한 물줄기를 이룬 남한강변을 따라 애곡리 수양개 마을에 이르렀다. 홍수로 패인 지층과 마을 앞 고추밭에서 빗물에 씻기어 반들거리는 검은색의 깨진 돌조각들이 눈에 띄었다. 발달된 기술로 제작된 구석기시대의 석기였다. 장마철 물난리 속에서 이렇게 수양개 유적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수양개 유적의 조사내용은 지표조사 보고서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사진 1장이 실려 있으나 그마저도 유적 명을 다르게 표시하였다. 힘들게 찾은 유적이 최종 결과물인 보고서에는 완전히 빠져 있었다. 영원히 물속에 잠길 운명에 놓이게 된 셈이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수양개 유적은 1983~1985년까지 4차례 발굴조사를 하게 된다(수양개 유적 1지구).

그 결과 50곳의 석기제작소와 여기에서 생산된 약 3만여 점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셰일·반암·흑요석 등 질 좋은 돌감의 선택, 세련되고 발달된 석기제작기술의 적용,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여러 종류의 석기제작, 용도에 맞게 만들어 쓴 다양한 종류의 석기, 내면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예술품 등등. 수양개 유적에서 나온 이들 유물들은 인류역사의 99.5%쯤을 차지하는 구석기시대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때인 후기 구석기시대의 발전된 석기제작기술과 문화양상을 특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구석기문화가 화려하게 꽃을 피운 것이다.

그 가운데 중요한 석기가 슴베찌르개이다.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명칭, 형식, 기능 등을 분석 연구하였다는 점에서 학사적 의미가 크며, “수양개형 슴베찌르개”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표준유물로서의 가치도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슴베찌르개는 동북아시아에서 우리나라에 기원을 둔 독특한 석기로 자루에 결합시킨 매우 효과적인 수렵도구이다. 이런 석기 형식과 제작기술은 일본 열도로 전파하였다. 구석기시대에 문화 한류가 시작된 것이다. 그 중심에 슴베찌르개가 있다.

그 밖에 주먹도끼·찍개·긁개·밀개·새기개 등 완성된 연모와 함께 몸돌·망치돌·모룻돌 등 여러 종류의 석기제작 관련 유물들이 나왔다. 또한 서로 짝이 맞는 유물들이 다량 출토되어 수양개 사람들이 어떤 돌감을 선택하고, 어떤 위치에서, 어떤 기술을 적용하여, 어떠한 떼기 절차를 거쳐 석기를 만들고 사용했는가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석기를 만들어 쓰던 사람들의 모습은 영원히 사라졌으나, 그들이 남긴 돌조각들을 통해서 유적의 공간활용과 석기제작기술, 도구의 쓰임새 등을 가늠하여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유추해 본다.

능수버들 넘실대며 쑥 향기 품어내던 애곡리 수양개마을 남한강가의 양지바른 남향에 터를 잡고 당시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2만년 전의 수양개 사람들. 무리지어 이동생활하며 사냥과 채집으로 삶을 이어가던 구석기시대를 마감하는 즈음에 형성된 수양개 유적은 구석기문화의 꽃을 화려하게 피운 곳이다.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의 교과서와 같은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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