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색한 김기식 구출작전
옹색한 김기식 구출작전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04.1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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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제후들이 중국 대륙의 패권을 놓고 각축하던 전국시대. 제(齊)나라가 노()나라를 침공했다. 노나라 지도자 목공(穆公)이 국경에 파견할 대장군을 급히 물색하자 신하들이 오기(吳起)를 추천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적국인 제나라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없던 일이 됐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오기는 다음날 목공을 찾아가 보따리 하나를 바쳤다. 보따리에서는 오기가 자른 아내의 머리가 나왔다. 조정이 우려한 결격사유가 사라졌으니 자신을 기용해달라는 시위였다. 기겁을 한 노나라 대신들은 `인간말종'에게 군권을 맡길 수 없다며 손사레를 쳤다. 그러나 목공은 그의 광기를 시험하기로 했고, 오기는 완벽하게 화답했다. 제나라는 그에게 연전연패하고 퇴각했다.

그는 명장 소리를 들었지만 출세를 위해 고락을 함께한 조강지처의 목을 벤 비정한 인간이라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녔다. 때문에 그를 발탁하려는 나라마다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자리를 맡더라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오기는 자신을 중용한 주군에게는 반드시 보답했다. 위(魏)나라 문후(文侯)는 오기의 전력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경의 요충인 서하(西河) 태수에 그를 임명했다. 전국책(戰國策)은 그가 서하에 재임하는 동안 76번 전투를 벌여 64번 이겼다고 전한다. 나머지 12번의 전투도 무승부였고, 일방적으로 진 싸움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생전에 패전을 기록하지 않은 전쟁의 신으로 불렸다.

도덕성과 인품에 결정적 흠결이 있더라도 인사권자가 누군가를 써야 할 때가 있다. 능력이 워낙 독보적이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해당할 것이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이 이런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김 원장 사태와 관련해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 판정이 나오거나, 국회의원 관행에 비춰 도덕성이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인사에 대한 판단을 선관위에 맡겨 법리적 평가를 받아서라도 김 원장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국민들의 도덕성 평가에서 늘 바닥을 기는 곳이 국회다. 그런 기관에서의 평균 수준을 고도의 강직과 청빈이 요구되는 금감원장 기용의 잣대로 삼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의 일부 일탈은 사회단체와 여당 의원들까지 고개를 흔들 정도로 관행의 수위를 넘었다. 청와대가 자신하는 것처럼 국회의원 평균치에는 도달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얘기다.

청와대에 권하고 싶다. 이런 옹색한 방어논리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김기식이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금감원장 감임을 납득시키는 데 주력하라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 그가 가져올 국익을 감안해 웬만한 하자는 관용해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김 원장은 참여연대 시절부터 치열한 비판과 개혁적 논지로 일관하며 국민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서 확인된 것은 밖을 향해서는 추상같았던 비판들이 정작 자신을 향해서는 `우이독경'에 그치고 만 `내로남불'의 흔적뿐이다.

오기가 그나마 당대는 물론 후대의 역사에서도 인정을 받은 것은 `도덕성을 상실한 파렴치한'이라는 이미지를 `적국의 침범을 허용하지 않은 명장'이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실체적 평가를 통해 극복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김 원장을 오기의 능력에 비견할 자신이 없다면 그가 전임자의 뒤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 옳다. 최홍식 전 금감원장은 수년 전 하나은행 신입사원에 친구 아들을 추천한 사실이 드러나자 사흘 만에 사임했다. 그는 “인사에 직접 간여하거나 불법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행위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을 수 있다”며 물러났다. 전·현 금감원장 모두 자신의 행위가 국민 눈높이에 미달한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그것을 사임의 사유로 달았고, 다른 사람은 불법은 아니다며 변명의 구실로 삼고 있다. 도덕성을 재단하는 잣대가 이렇게 갈수록 무뎌져서야 정부의 개혁 의지를 누가 믿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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