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은 귀는 천년, 말한 입은 사흘
들은 귀는 천년, 말한 입은 사흘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8.04.12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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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방석영

“들은 귀는 천년이고 말한 입은 사흘”이란 말이 있다. 누군가가 자신을 비난하고 욕한 것은 쉽게 잊혀 지지 않지만, 자신이 타인을 비난하고 욕한 것은 쉽게 잊는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어리석음을 경책하는 속담이다.

안으로 굽은 팔을 바르게 펴고, 마음을 0점 조정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으로 나뉘기 전의 고요하고 순수한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그 전에는 눈앞의 상황을 치우침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입장을 벗어나,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정견(正見)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타인을 지적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침묵이 금인 경우다.

타인을 지적하고 비난하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타인이 좋아할만한 말들을 억지로 꾸며서 하는 것도 옳지 않다. 마음의 0점 조정에 따라 정견(正見) 및 정사(正思)가 담보된 정언(正言)이 아니라면 그 어떤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바른 견해와 바른 생각에 따른 바른 말이라면 비록 그 말을 듣는 상대가 싫어할지라도, 흔들림 없이 보고 느낀 그대로를 가감 없이 말해줘야 할 때도 있다. 바로 웅변이 금인 경우다.

이 같은 맥락에서 공자는 “知之爲知之(지지위지지) 不知爲不知(부지위부지) 是知也(시지야)”, 즉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쌍벽을 이루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창한 순자는 “是謂是(시위시) 非謂非(비위비) 曰直(왈직)”, 즉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을 일러 올곧음이라고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무조건 내가 갑이고 네가 을이라고 규정짓는 뒤틀린 마음을 0점 조정함으로써, 자기 자신 위주의 `내로남불'을 벗어던지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들뜬 생각과 감정을 멈추고 그치는 지감(止感)이 긴요하다. 지감이 뜻과 같이 이뤄지지 않으면 호흡을 가다듬는 조식(調息)이 필요하다. 조식을 통해서도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목전의 상황과의 접촉 자체를 끊는 금촉(禁觸)을 통해 마음을 0점 조정해야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맞아 맞아'하는 긍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일어난다거나, `생각과 감정을 멈추고 그치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가?'라는 등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일어난다면, 그와 같은 생각과 감정에도 끌려가지 말고 즉시 알아차리고 마음을 0점 조정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긍정과 부정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 없는 맑고 밝은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0점 조정된 저울만이 제대로 무게를 달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도 목전의 상황에 대한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별하기 위해선, 마음의 0점 조정이 반드시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팔이 안으로 굽듯이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치우쳐 있는, 들뜨고 흐트러지고 탁해진 생각과 감정을 쉬고 또 쉼으로써 마음을 0점 조정하면, 비로소 처한 상황에 딱 들어맞는 바른 생각과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치 몸이 스스로 기지개를 켜듯, 애써 함이 없이 바른 생각과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이 저절로 온 몸과 온 마음에서 울려 퍼지게 된다.

이렇게 억지로 애쓸 필요 없이, 온 몸과 온 마음에서 저절로 발현(發顯)되는 아름다운 말이 바로 우리 모두를 살리는 태초의 하느님 말씀이며, 부처님의 법음(法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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