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봄타령
한반도의 봄타령
  • 김기원<시인 · 편집위원>
  • 승인 2018.04.11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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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시인 · 편집위원>

어느덧 4월 중순입니다. 하여 봄기운이 완연한 아니 봄이지만 겨울 티가 남아있는 3월과 여름 티가 묻어나는 5월이 아닌 봄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매화 산수유는 물론 목련과 벚꽃이 피었다 지고 개나리 진달래 철쭉들의 꽃 잔치가 한창인 순정한 봄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사와 세상사는 봄같이 아니하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입니다.

하여 절로 우리 민요 사철가(四節歌)가 읊조려집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구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그래요. 봄을 봄답게 보내지 못한 회한과 덧없이 흘려버린 세월로 인해 봄이 와도 몸과 마음이 시린 거지요. 60대 중반에 들어서고 보니 저 또한 영락없는 사철가 신세입디다. 여태껏 수많은 봄을 무위로 맞이했듯이 봄을 은행에 예금해놓은 것처럼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 쓸 수 있으리라 여겼거든요. 내 인생 최고의 봄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언제였는지도 모르는.

마냥 헛산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어쩜 지금이 내 인생에 최고의 봄날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봄은 여름 가고, 가을 가고, 겨울이 가면 어김없이 오고 또 갑니다. 그렇게 뻔히 올 줄 아는 봄을 기다리는 건 겨울이 주는 고난과 결핍 때문일 겁니다. 고난과 결핍이 깊고 혹독할수록 더욱 찬란해지는 봄, 그런 희망과 기다림의 미학이 있어 봄이 좋은 거지요.

각설하고 요즘 한반도에 이는 봄바람 아니 봄타령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허구한 날 원수처럼 으르렁대던 남과 북이 대표단을 주고받으며 곧 평화통일을 이룰 것처럼 ‘봄이 온다’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어서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우리 예술단의 두 차례 평양공연 제목이 바로 ‘봄이 온다’였거든요. 상징성도 좋았거니와 지켜보는 북쪽의 분위기도 좋았으니 딴은 그럴 만도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봄이 온다’는 현재진행형인 ‘봄이 왔다’가 아닙니다. 봄이 오기를 염원하는 희망의 언어이지요. 지구 상에 하나뿐인 분단국가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를 짊어진 채 극한 대치를 하고 있는 남과 북의 오랜 염원을 네 글자로 절묘하게 상징했으니 상찬받을 만한 절구입니다.

하나 한반도에 드리운 겨울이 몹시 길고 깊어 섣불리 꽃망울 터트렸다간 동사하기 십상이라 살얼음을 걷듯 해야 합니다. 밟지 말아야 할 지뢰가 도처에 널브러져 있고 넘어야 고산준령도 많고 많으니 말입니다.

무엇보다 북쪽이 노리는 봄과 우리가 염원하는 봄이 다를 수 있고, 갑자기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김정은의 속내와 북한당국의 노림수를 뛰어넘어야 할 묘책을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므로 봄이 온다고 마냥 들떠 있을 게 아니라 차분하게 상황을 살피고 난제들을 풀어갈 힘과 지혜를 결집해야 합니다.

만사 불여튼튼이라 했습니다. 춘래불사춘이 되지 않도록 유비무환(有備無患)해야 합니다. 고립무원에 빠진 북한의 위기탈출을 돕는 죽 쒀서 개 주는 봄이 아니라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도탄에 빠진 북한 주민들을 구해내는 봄이어야 합니다.

결단코 자유와 민주의 꽃이, 상생과 번영의 꽃이 만개하는 봄이어야 합니다. 지금 한반도에 부는 봄바람을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남북의 교류협력 증진과 평화통일의 싹을 틔우는 봄바람이라면, 그런 봄타령이라면. 삼천리금수강산에 정말 봄다운 봄이 와야 합니다. 그대에게도.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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