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박수칠 일인가
이게 박수칠 일인가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8.04.0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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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이게 박수 칠 일인가. 기가 찰 노릇이다.

채용 비리와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됐던 구본영 천안시장이 지난 6일 구속적부심을 통해 가까스로 풀려났다. 구 시장에 대한 석방이 결정된 것은 이날 오후 6시30분쯤. 구 시장은 이후 갇혀 있던 천안동남경찰서 유치장에서 2시간여 후인 8시40분쯤 나왔다. 법원이 제시한 석방 조건인 2000만원의 현금 납부를 위해 돈을 구하고, 또 출감시 필요한 행정 절차를 밟느라 늦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구 시장이 유치장을 나선 직후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찰관들에게는 이해 못 할 장면이 연출됐다.

경찰서 1층 유치장에서 현관까지 통하는 3m 너비의 복도와 10평 남짓한 로비는 이필영 부시장을 비롯한 30여명의 천안시청 간부 공무원들로 꽉 차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3, 4, 5급 사무관 이상 간부들로 구 시장의 출감을 기다리며 길게는 2시간 전부터 나와서 구 시장을 기다렸다. 이후 마침내 구 시장이 유치장 문을 열고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나서자 복도에서 현관 로비에 도열하고 있던 공무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구 시장도 이들의 `환영 박수'에 웃으며 손을 들고 화답하며 일일이 악수를 했다. 어떤 공무원은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며 구 시장의 출감을 기뻐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구 시장이 공무원들과 악수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당시 현장에 있던 유치장 업무 담당자 등 5~6명의 경찰관과 기자 등이 그대로 목격했다. 심지어 경찰서장까지 나와 현장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봤다.

“마치 무죄 방면돼 석방된 사람 같았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A씨는 이렇게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따금 TV에서 기업의 대표들이 출소할때 임원들이 도열해 환영하는 모습과 흡사했다”며 “특히 축하한다며 박수를 치는 모습에는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 경찰관은 “적어도 우리 조직은 뇌물죄로 구속됐다가 풀려난 피의자 신분의 경찰서장을 유치장까지 쫓아가서 박수를 치며 환영하진 않는다”고 꼬집었다.

구 시장은 석방 다음날인 7일 일상과 다름없는 행보로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이날 오후 2시 천안박물관에 나타났다. 베트남으로 해외참전지 견학을 가는 60여명의 보훈단체회원들을 배웅하기 위해서다. 물론 선거를 염두에 둔 `행차'다. 연이어 예식장에도 모습을 드러낸 그는 다음날 천안시장 공천 심사장에 나와 면접 일정을 소화했다. 지지자들 사이에선 `무죄로 풀려난 후, 몸도 추스리지않고 시민들을 챙기는 시장님', 반대쪽 사람들은 `자숙하지 않고 돌아다닌다'는 말들이 교차해 나돌았다.

일주일만에 천안시청에 출근한 구 시장은 9일 홍보담당관실을 통해 시민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짧은 성명을 냈다.

“오직 시민들만 바라보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불미스러운 일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의혹과 진실이 무엇인지 당장은 혼란스럽겠지만 한 걸음 물러나 평정심을 잃지 말고 지켜봐 주기 바란다”

진정 어린 사과와 해명 없이 되레 시민들의 평정심만을 걱정하는 이 성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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